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 주로 이용하던 미국 16위 실리콘밸리은행(SVB)이 10일 무너졌다. 하루 이틀 간격을 두고 코인(가상화폐) 업계 전문은행인 시그니처은행과 실버게이트은행도 문을 닫았다. 미 연준의 긴축으로 가장 심한 타격을 받은 곳이 테크와 코인 업계다. 이들과 주로 거래하던 은행 세 곳이 추락했다.

지난 13일 실리콘밸리뱅크(SVB)의 한 지점 앞에 고객들이 예금을 찾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미국 정부는 이 은행이 파산했지만, 예금을 전액 보증한다고 했다. /UPI 연합뉴스

미 연준은 작년에 1980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금리를 올렸다. 그러자 특히 그간 ‘이지 머니(easy money, 저금리 자금)’가 넘쳤던 벤처와 코인 업계에서 거품이 꺼지고 돈줄이 마르기 시작했다. 테크 기업 중심의 나스닥 증시는 현재 재작년 11월 고점 대비 30% 가까이 폭락했고, 비트코인 가격은 반 토막 났다. 미국 대표 주가인 다우지수는 10% 남짓 하락했는데 충격이 훨씬 컸다. 미국 정부는 예금을 전액 보증하면서 수습에 나섰지만 다른 은행들로 ‘전염’될지 파장을 가늠하긴 쉽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연준이 긴축을 멈출 것이라고 보긴 아직 이르다. 물가가 6%대로 감당하기에 너무 높기 때문이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그간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금리를 올리겠다”고 해왔다. 물가를 잡지 못해 생기는 고통이 더 심하단 이유다. 은행 파산이 크게 번지지 않으면 긴축 행보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그간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금리를 올리겠다”고 해왔다. /로이터 연합뉴스

파월 의장은 작년 11월 ‘더 높게, 더 오래(higher for longer)’를 새 정책 구호로 꺼냈다. 금리를 연 5% 넘게 올리고, 그대로 오래 가져갈 것이란 얘기다. 과거 연준은 금리를 정점까지 올린 후 평균 11개월을 유지했다.

모건스탠리의 최고투자책임자 마이크 윌슨의 말을 빌리면 연준의 행보는 소위 ‘데스 존(death zone)’을 부를 위험이 있다. 데스 존은 해발 8000m 이상에서 산소가 희박한 구간이다. 데스 존처럼 유동성이 희박한 구간이 생긴다는 비유다.

월가에선 ‘연준의 긴축은 항상 뭔가를 부쉈다’는 말이 있다. 1995~1996년 인상기 뒤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찾아 왔고, 2000~2001년엔 닷컴 버블이 붕괴됐다. 2004~2006년 인상했을 땐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를 거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통화정책엔 1년 가까운 시차가 있는 만큼 금리 인상기뿐 아니라 그 이후 유동성 증발 시기도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은 이미 미국 금리 인상의 충격파를 맞고 있다. 소규모 개방 경제라 미국 금리 인상 흐름을 거스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미 작년 4분기 역성장했다. 올해 한국은행은 1.6% 성장을 내다본다. 이는 오일 쇼크 때인 1980년 -1.6%, 외환 위기 때인 1998년 -5.1%,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인 2009년 0.8%, 코로나 위기 때인 2020년 -0.7% 등 네 차례 위기 때를 빼고는 가장 낮다.

게다가 1월 경상수지 적자 폭이 45억2000만달러로 역대 최대다. 가뜩이나 성장이 위태로운데 위기 방어 수단인 달러마저 빠져나갔다는 얘기다. 외환위기 전엔 1996년 1월부터 17개월 연속 경상수지 적자였고, 2008년엔 3월을 빼곤 1~8월 적자였다. 경상수지 적자가 위기의 사전 경고등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지금 은행들 팔 비틀기나 할 때가 아니다. 한은은 외환보유액 등 위기 방어막을 점검하고 감독 당국은 투기 자금이 트집 잡을 곳은 없는지 따져 봐야 한다. 혹시 SVB처럼 금리 급등 위험에 크게 노출된 곳은 없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작년 하반기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자금 경색 때처럼 시장 불안감이 커질 땐 단기에 유동성을 지원할 준비도 해야 한다. 대비책을 미리 짜내야 그나마 국민 고통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