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버에는 ‘다라 코로스샤히 봇’이라는 특별한 인공지능(AI)이 있다. 우버를 승차 공유 스타트업쯤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는 17년 된 글로벌 대기업이다. 1500억달러(약 220조원) 안팎의 시가총액은 현대차보다, 직원 3만4000여 명은 네이버보다 훨씬 많다. 이 대기업 우버 직원들이 최고경영자 다라 코로스샤히의 데이터를 AI에 학습시켜 CEO와 똑같이 반응하는 봇(Bot·사람인 것처럼 활동하는 자동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직원들은 이 ‘CEO 봇’에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받는 피드백을 참고한다. 이 봇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비공식 보스로, 그의 입장은 참고용일 뿐 의사 결정권은 없다. 추정컨대 ‘CEO 보고 울렁증’이 있는 직원이 만든 것 같다.
우버의 CEO 봇 이야기를 들은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는 “대부분 조직에서 병목 현상은 CEO와 경영진에게서 발생한다”며 “CEO 봇이 도입되면 20명이 1000명처럼 일할 수 있다”고 했다. 아시아 최대 블록체인 투자사인 해시드에도 ‘김서준봇’이 있다. 김서준봇은 김 대표가 본인 데이터로 직접 만든 AI 에이전트다. 꽤 정확하다고 한다. 예컨대 직원들은 클라우드 플랫폼 접근 권한 요청을 김 대표가 아닌 김서준봇에 한다.
과거라면 팀원이 메시지를 보내고 2시간쯤 기다려야 했다. 김 대표가 설정 메뉴를 찾고, 팀원 이메일 주소를 확인하고, 승인까지 3~4시간이 걸렸다. 이젠 김서준봇이 24시간 대처한 뒤 “이런 내용인데 승인할까?”라고 묻는다. 김 대표는 승인 버튼만 누른다. 걸리는 시간은 10초. 현재는 조직 내 한 직원이 자신의 봇을 만들고 CEO봇과 업무 협업을 시킨다고 한다.
이것은 공상과학(SF)이 아니라 현실이다. 한 스타트업 홍보팀장은 ‘양상훈봇’을 만들었다. 본지 양상훈 주필을 학습시킨 봇에게 언론사에 배포할 보도자료 초안을 주고 이른바 ‘데스킹’을 요청한다. 양상훈봇은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논리 흐름을 점검하고 문장을 다듬는다. 다른 스타트업 대표는 ‘회의봇’과 함께 다닌다. 타사와 회의 내용을 녹음해 회의봇에 전달한다. 회의봇은 대표의 관심사와 회사 상황, 비즈니스 모델 등을 파악하고 중요한 내용을 추출·정리해 이메일로 보고한다. 다음 일정이 잡혔다면 자동으로 캘린더에 반영한다.
이처럼 AI 봇은 이미 일상이 됐다. 단, 바이브코딩을 써본 사람에게만 그렇다. 바이브코딩은 컴퓨터 언어가 아닌 일상어로 AI가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는 대화형 코딩 방식이다. 바이브코딩이란 말을 처음 접했다면, 당신에게 CEO 봇은 일상이 아닌 낯선 미래로 느껴질 것이다. 20여 년 전, 한 신문사 수습기자 공채 시험장에 갔다가 다음과 같은 문제를 만났다. “인터넷에 들어가, 제시된 단어와 관련된 정보를 검색해 시험지에 적어 내라”는 것이었다. 지금 보면 황당할 정도로 쉬운 인터넷 검색이지만 당시 문제를 출제한 50대 시험관에게는 ‘아무나 못 풀 문제’였을 것이다. 바이브코딩과 AI 봇도 젊은 세대 등 일부에게는 상식이지만 다른 세대에겐 딴 세상 이야기일지 모른다.
‘AI 일상’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오지 않는다. 챗GPT와 잡담만으로 AI 시대에 적응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CEO봇을 상전으로 모실지, 어시스턴트로 부릴지는 AI 문해력 차이에서 갈릴 것이다. 누구에게는 AI가 노동에서 해방을 가져다주는 축복이 되지만, 다른 이에게는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는 낙오의 벽이 될 수도 있다.
20년 후, 누군가는 “AI 봇 만들 줄 아는지를 시험 문제로 냈던 시절이 있었다”는 칼럼을 쓰지 않을까. 지금 우리는 그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