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왜곡 적용하는 판·검사를 처벌하는 ‘법왜곡죄’가 국무회의를 통과한 지난 5일, 지방의 한 법정에서 50대 상습 스토킹범 A가 법왜곡죄를 거론했다. 그는 자신이 스토킹하던 피해자를 등장인물로 한 음란 소설을 블로그에 게시해 명예훼손과 통신매체 이용 음란 혐의로 작년 11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이번이 세 번째 실형이다. 그런데도 그는 항소심에서 “민주당에서 법왜곡죄를 통과시켰으니 내 사건은 분명 법 왜곡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름과 나이를 비슷하게 써서 욕을 했을 때, 판사가 ‘나구나’ 하고 고소하면 처벌받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악질 범죄자가 법왜곡죄를 신(新)무기로 들고 나온 것이다.
이 사건 피해자인 40대 여성은 일면식도 없는 A에게 7년 가까이 시달려 왔다. A는 2019년부터 가끔 미디어에 얼굴과 글이 노출되는 그녀를 표적으로 삼았다. 처음에는 글에 댓글을 다는 정도였지만, 차츰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튜브 채널에서 실명을 거론하며 공개적 괴롭힘으로 나아갔다. 그녀가 유튜브 측에 신고해 해당 채널이 삭제되자 그때부터는 이메일과 편지로 직접 협박을 이어갔다.
참고 참던 그녀는 2021년 11월 결국 법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보복으로 “앞으로 엄청 괴로울 거다” “네 목줄을 쥐고 있다” 같은 악담을 퍼부었다. A는 첫 사건에서 음란죄·모욕죄 등이 인정돼 징역 1년이 확정됐고, 스토킹과 보복 협박 등이 추가로 드러나 복역 중 징역 2년 6개월이 더해졌다. A는 수감 중에도 피해자에게 음란한 그림을 담은 편지를 보내며 괴롭힘을 멈추지 않았다.
3년 6개월 형기의 막바지에 이르러 이번 사건으로 다시 구속되자 A는 법왜곡죄로 재판부를 압박해 감형을 노리는 것 같다. 뜻대로 안 풀리면 재판 도중 1심 판사나 검사를 고소할 것이다. 그러면 또 다른 재판이 열리고 피해자는 더 고통받게 된다. 경찰이 사건을 각하 또는 무혐의 처분하면 담당 경찰관을 고소할 수도, 판결에 불복해 재판소원으로 다시 한번 시간을 끌 수도 있다.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A 같은 범죄자의 소송이 인용되긴 어렵겠지만, 소송 제기를 막을 방법은 없다. 대법원이 경고한 무한 반복의 ‘소송 지옥’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저 놈 손에 죽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아요. 판사가 흔들릴까 봐 너무 무서워요.”
그녀는 기자에게 이렇게 절규했다. A가 감형돼 풀려나는 것도, A와 엮여 끝도 없는 재판을 이어가야 하는 것도 피해자에겐 공포 그 자체다. 그녀는 “나 같은 피해자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이렇게 법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법왜곡죄와 재판소원법이 통과된 뒤부터 잠이 오질 않는다”고 했다.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법왜곡죄, 재판소원, 대법관 증원 등 ‘사법 3법’은 국민 기본권 보호와 사법권 남용 차단을 내걸고 있다. 그러나 묻고 싶다. 판·검사의 권한 남용을 견제하려다 무고한 피해자를 끝없는 불안에 떨게 하는 법이 과연 국민을 위한 법이라 할 수 있겠는가.
지난 12일 ‘사법 3법’이 시행됐다. 1주일도 안 돼 법왜곡죄와 재판소원 수십 건이 접수됐다. 협박범, 성추행범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소송을 건다. 범죄자에게 쥐여 준 칼을 막으려면 지금이라도 방패를 마련해야 한다. 허위 고소와 재판 방해 수단으로 악용되는 법왜곡죄와 재판소원을 견제할 ‘사법 방해죄’ 같은 보호 장치를 서둘러 도입하는 것이 이 법을 만든 거대 여당의 책임이다. 사안에 따라 목적은 달랐지만, 민주당도 과거 여러 차례 사법 방해죄 도입을 외치지 않았나. 그것이 피해자가 최소한의 안심을 얻는 길이고, 꼬인 ‘사법 개혁’을 바로잡는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