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분야를 취재하다 보니 지인들로부터 자녀 교육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최근에는 예비 고2와 초6 두 아들을 둔 부모가 “입시가 또 바뀐다는데 도대체 뭐가 달라지는 거냐”고 한숨부터 쉬며 물었다. 고2는 ‘고교학점제’를 처음 적용받은 학생들이기 때문에 그에 발맞춰 내년엔 지금과 다른 수능 시험을 보게 된다. 그런데 정부는 이 제도의 효과도 검증하지 않은 채, 이르면 올해 중1이 대상인 2032학년도 대입을 또 손보겠다고 한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는 특별위원회를 꾸려 대입 개편안을 논의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 초안을 발표하고 여론 수렴 절차를 거쳐 내년 3월 확정할 계획이다. 첫째 아이 입시 제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데 둘째 아이 입시 제도까지 바뀐다면, 어느 부모인들 불안하지 않겠는가.
최근 국교위가 전국 시도교육청에 배포한 ‘공교육 혁신 보고서’에는 검토 중인 파격적 개편안이 담겨 있다. 수능과 내신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수능에 논·서술형 문항을 도입하자는 주장, 수시·정시를 통합하자는 제안도 들어 있다. 국교위는 “참고 자료일 뿐”이라고 선을 긋지만, 학부모들은 벌써 술렁이고 있다. 이런 변화가 실행되면 현장은 엄청난 혼란에 직면할 게 불보듯 뻔하다. 현행 대입의 틀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 본고사가 부활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한국의 대입은 지나치게 자주 바뀌었다. 해방 이후 큰 틀의 개편만 18차례, 세부 변경까지 포함하면 40차례가 넘는다는 분석이다. 평균 4년에 한 번 꼴이다. 최근엔 1년 만에 바뀐 적도 있다. 정권마다 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대입 개편으로 해소하려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다.
일각에선 대입 변화가 학교 교육에 혁신을 불러올 거라고 기대한다. 교육학에서는 이를 ‘워시백 효과(washback effect)’라 부른다. 평가 방식이 바뀌면 수업과 학생의 학습 방식도 변한다는 논리다. 차정인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도 최근 대입 개편 방향에 대한 인터뷰에서 “대입 제도는 고교 교육 정상화에 도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론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 교육에서 워시백 효과는 기대한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자주 바뀐 대입 제도는 학교에 준비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변화된 평가 방식에 가장 빨리 적응한 건 매번 사교육 시장이었다.
예컨대 교육계 리더들이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논·서술형 수능’이 그렇다. AI(인공지능) 시대에 발맞춰 객관식 수능 대신 글쓰기로 사고력을 기르자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교실에서 충분한 글쓰기·토론 수업이 이뤄지지 않는데 입시부터 바꾸면 결과는 뻔하다. 발 빠르게 채점 기준을 꿰뚫고 대비하는 사교육 시장만 커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대학의 수시 논술 전형이 그렇다. 논술 전형은 학교에서 전혀 대비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사교육으로 준비한다. 국내 최고로 꼽히는 한 대입 전문가가 최근 학원장들 모임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능에 논·서술형이 도입되는 순간 포대 자루에 돈을 쓸어 담게 될 거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고.
매년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는 사교육비(재작년 29조2000억원)도 결국 잦은 대입 개편의 결과다. 입시가 바뀔 때마다 불안한 학부모를 다시 사교육으로 내몰았다. 사교육 잡자고 대입을 손봤는데 거꾸로 사교육 시장을 키우는 역설에 빠진 것이다.
대입은 교육 개혁의 출발점이 아니라 마지막 퍼즐 조각이어야 한다. 학교의 수업과 평가 역량을 먼저 탄탄히 바꾸지 않고 입시 제도부터 급히 건드리면 더 큰 혼란만 낳는다. 국교위가 조급한 대입 개편 시도부터 재고하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