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5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일본 유학·취업 박람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유학 상담을 받고 있다. /뉴스1

‘탈(脫)한국’이 이제 일본으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최근 자녀를 일본으로 유학 보냈거나 보낼 예정이라는 기업 부장·임원을 10명 이상 만났다. 미국·영국 등 영어권 중심이던 ‘부모 등골 브레이커’ 리스트에 일본이 추가되고 있는 것이다. 게이오·와세다처럼 유명 대학만이 아니다. 리쓰메이칸·테이쿄·도요 대학 등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대학 진학을 위해 고2·3 때부터 일본어에 도전한 사례도 있었다. 왜 일본인가. “가까운 선진국이라서” “요즘 미국이 예전 같지 않아서”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같은 이유만은 아니었다. 입시 지옥, 다음엔 취업 지옥이 기다리고 있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저마다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선 결과였다.

대부분 입시 스트레스부터 언급했다. ‘스카이’ ‘인 서울’ 같은 협소한 잣대를 들이대며 사람을 판정하려는 한국 분위기에 지쳤다는 것이다. 시험 한 번으로 인생이 결정되고, 그게 싫으면 국영수과 기본 과목은 물론 수행평가, 동아리·봉사, 평판 관리까지 잘해 내야 한다. 내신을 한두 번 망쳤다면 자퇴도 불사해야 하며, ‘엄마의 정보력’을 위해 시간당 50만원짜리 컨설팅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옆 나라로 눈을 돌리니 숨통이 트였다는 것이다.

일본도 도쿄대·교토대 같은 최상위권 리그는 입시 지옥으로 불리지만, 그 외엔 대학 입학이 한국보다 수월하다. 4년제 대학만 800개로 한국의 4배인데, 이 중 ‘갈 만한’ 좋은 대학 비율도 지역별·전공별로 훨씬 많다. 입시 전형도 자신의 특장점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 예컨대 미술 전공이라면 실기와 면접만으로 갈 수 있는 좋은 대학이 많다. 선택지가 넓어지면 입시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일본 생활을 통해 얻게 되는 일본어 실력과 국제 감각은 덤이다.

일본 유학의 더 현실적인 이유는 취업에 있었다. 주변 유학생 다수는 현지 취업과 정착을 고려해 떠났거나 떠난다고 했다. 한국은 구직난이지만, 일본은 구인난이라는 것이다. 실제 일본은 일자리가 남아돈다고 할 만큼 젊은 인력이 귀하다. 인구 감소·고령화가 일찍부터 진행돼 온 탓이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 주요 기업들은 코로나 이후 사상 최대 이익을 경신하면서 신입 사원 채용을 늘리고 있다. 자동차·반도체 후방 산업 등 ‘소부장’을 중심으로 강력한 제조 기업들이 일본 경제를 받쳐주고 있다.

10년 전 단카이 세대(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마무리되면서 일본 기업들은 비용 절감과 이익 개선이 일어나고, 청년 채용 여유가 생기는 선순환도 나타난다. 여기에 일본 특유의 ‘신졸 일괄 채용’ 문화는 100%에 가까운 취업률을 만들어 낸다. 대규모 신입 공채는 종신 고용을 기본으로 하는 일본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를 효율적으로 육성하는 방식이지만, 대학을 갓 졸업한 이들을 ‘사회인’으로 키우는 사회적 책무이기도 하다.

반면 한국은 대졸자 10명 중 4명은 취업을 못 하고, 20~30대 ‘쉬었음’ 인구가 70만명에 달한다. 삼성을 제외한 주요 기업들은 신입 공채를 폐지하며 ‘수시 채용’ ‘경력 중심 채용’으로 전환했다. 경기 둔화 속에 변화와 혁신, 효율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해외 경험을 쌓은 학생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 기회가 없어서 나갈 수밖에 없는 학생이 많아지는 건 슬픈 일이다. 우리는 저출산 위기를 외치며 출산율을 높이려고 수십조 원을 쓰고 있다. 하지만 태어난 아이들이 청년이 되기도 전에 떠나 버린다면, 그렇게 쏟아부은 노력이 무슨 소용인가. 일본 유학 붐을 보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