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검사’ 제도의 뿌리는 미국이다. 닉슨 대통령이 자신의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 검사를 해임한 것이 계기가 돼 1978년 법적 근거(독립검사법)가 만들어졌다. 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수사의 공정성 확보라는 시대적 요구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 법은 1999년 폐기됐다. 21년 동안 특검 20여 개가 운용되며 무분별한 수사와 과도한 권한 행사, 예산 낭비와 정쟁의 도구화라는 부작용이 누적됐기 때문이다. 이후 미국의 특검은 법무장관이 필요에 따라 임명·감독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다만 극히 제한적으로 도입하고,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해 장관이 특검을, 의회가 장관을 감시하는 이중 통제 장치를 마련했다.
미국에서 특검법이 없어진 그해, 우리나라에선 특검법이 만들어졌다. 1999년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을 수사한 강원일 특검을 시작으로 작년 12월 28일 수사를 마친 민중기 특검까지 27년 동안 17개가 운용됐다. 2014년 정쟁을 줄이고 신속하게 발동하겠다며 만든 상설특검까지 합치면 19개에 달한다. 하지만 특검의 성적표는 초라한 수준이다. 살아 있는 권력엔 면죄부를 주고, 정적을 겨눌 땐 무리수를 두는 사례가 빈번했다. 미국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폐지했던 ‘정치적 도구화’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다.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특검은 ‘이용호 게이트’를 수사한 차정일 특검(2001년)과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을 수사한 허익범 특검(2018년) 정도다. 모두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한 공통점이 있다. 또 검사 시절 인지도가 높지 않던 조용한 원칙주의자들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두 특검은 당시 정권에 치명타를 입혔다. 차 특검은 검찰이 덮은 이용호 게이트를 끈질기게 파헤쳐 검찰총장과 현직 대통령의 아들 비리까지 밝혀냈다. 허 특검 역시 120만개 댓글 전수 조사로 문재인 정부 실세이자 차기 대권 주자였던 당시 김경수 경남지사를 낙마시켰다.
반면 최근 막을 내린 내란·순직 해병·김건희 등 3대 특검은 정반대 평가를 받는다. 특수통 고검장 출신(내란 특검 조은석), 법원장 출신(김건희 특검 민중기), 군법무관 출신(해병 특검 이명현)의 중량감 있고 정치색 짙은 인사들이 수사를 지휘했다. 수사 인력 500여 명, 예산 약 200억원을 쓴 역대 최대 규모, 최장 기간 수사였지만, 성과는 명성에 한참 못 미쳤다.
3대 특검은 총 126명을 재판에 넘겼지만, 수사 기간 내내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내란 특검은 외환 혐의 수사를 명분으로 미군이 관리하는 오산 기지를 압수 수색해 외교적 마찰을 빚었고, 해병 특검은 청구한 구속영장 10건 중 9건이 기각되는 수모를 겪었다. 압권은 김건희 특검의 ‘3대 오점’이다. 수사받던 공무원 자결로 드러난 강압 수사, 구속자 절반 이상을 별개 혐의로 엮은 별건 수사, 통일교와 여당의 커넥션에 눈감은 편파 수사 논란은 특검의 태생적 한계와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특검은 검찰과 경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며 공정성을 잃었을 때 도입하는 비상 수사 기구여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특검의 방향성을 결정하기 일쑤다. 그렇다 보니 정치적 중립이라는 목표에서 멀어지고, 휘두르는 칼은 무자비하다. 지금도 ‘관봉권·쿠팡’ 상설 특검이 돌아가고, 정치권에선 3대 특검을 연장하는 제2 특검, 통일교·신천지 정교 유착,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공천 헌금 등을 놓고 여야 할 것 없이 특검을 외친다.
국민의 피로감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 27년 전 미국처럼 한국의 ‘정치 특검’도 유통기한이 다 된 것은 아닌지 냉정히 돌아봐야 할 때다. 민주주의를 병들게 하는 특검 남발부터 멈춰야 한다. 그것이 공정과 신뢰의 사법 시스템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