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한 전자담배 무인점포의 모습. 오는 4월말부터 합성 니코틴을 사용하는 액상 전자담배도 일반 담배처럼 규제를 받게 된다. /고운호 기자

4월 말부터 합성 니코틴을 사용하는 액상형 전자담배도 국내에서 ‘담배’로 규제받는다. 일반인에게는 당연히 담배로 여겨지는 이 액상형 전자담배가 법적으로 담배로 분류되기까지 약 10년이 걸렸다.

당초 국회에서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했지만, 업계 로비와 담당 상임위 내 의원들 간 이견, 부처 간 이해관계 등이 얽혀 계속 처리되지 않다가 지난해 말에야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담배사업법 내 담배 ‘정의’ 조항에서 ‘연초(煙草)의 잎’을 ‘연초나 니코틴(천연·합성)’으로 고친 게 핵심이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대부분이 액체에 녹인 합성 니코틴을 흡입하는 방식인데, 그동안 담배 정의에 합성 니코틴이 들어가지 않아 담배 분류에서 빠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액상형 전자담배도 일반 담배나 궐련형(스틱) 전자담배처럼 ‘건강 경고’ 그림과 문구가 표시되고, 학교·병원·관공서 등 금연구역에서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하면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된다. 또 일반 담배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쇼핑몰이나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판매가 불가능해진다. 액상형 전자담배를 판매하는 무인 자판기에 대한 규제도 강화되면서, 성인 인증 장치가 의무적으로 설치된다.

바꿔 말하면, 담배라면 당연히 받았어야 할 온갖 규제로부터 수년간 벗어나 있던 셈이다. 물론 지금이라도 바로잡은 건 다행이지만, 정부나 국회, 정치권 모두 “청소년 건강 문제를 수년간 방치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합성 니코틴 ‘규제 공백’ 기간에 액상형 전자담배는 이미 청소년 사이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고교생들의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은 2020년 2%대에서 2024년 4%대로 증가했다. 또 ‘액상형 전자담배로 흡연을 시작한 학생의 60% 이상이 나중에 일반 담배를 사용한다’는 청소년건강패널조사 결과(2024년 발표)를 감안하면, 일반 담배 흡연으로 이어지는 ‘관문’이 규제 공백 때문에 계속 열려 있던 셈이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는 성인 인증 절차가 미비해 온라인에서 청소년이 전자 담배를 구할 수 있는 판매 게시글이 2020년 202건에서 2024년 1338건으로 5년 사이 약 6배 증가했다는 자료(한국건강증진개발원)도 나왔다.

왼쪽은 무선 이어폰 케이스처럼 생긴 전자담배. 뚜껑을 올리면 흡입구가 나온다. 오른쪽은 미니 텀블러 모양의 액상형 전자담배. /네이버블로그·한국건강증진개발원

액상형 전자 담배가 그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청소년을 유혹한 것도 줄곧 방치돼 왔다. 요즘 액상형 전자 담배는 USB(이동식 저장 장치), 립글로즈, 텀블러는 물론, 이어폰 케이스, 가방에 걸 수 있는 열쇠고리(키링), 손목에 차는 스마트워치 디자인으로까지 제작돼 담배 모양을 감추고 있다. 부모나 교사 입장에선 담배인지 알아채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동안 액상형 전자 담배가 ‘공산품’으로 규정돼 온라인 유통이 가능했는데, 판매 업체들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티 안 나는 전자 담배를 찾는 소비자를 위한 제품”이라고 홍보했다. 결국 이 모든 게 합성 니코틴 ‘규제 공백’ 기간에 이뤄진 일들이다. 서둘렀더라면 청소년들이 좀 더 보호받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이번에 합성 니코틴을 규제하면서 유사 니코틴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유사 니코틴은 화학적 구조가 니코틴과 닮아 효과도 비슷한데, 일부 업체는 이를 ‘무(無)니코틴’으로 표기해 판매하고 있다. 중국산 수입량이 4년 새 2배 넘게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를 놓고 중독성이 일반 니코틴보다 더 강하다는 일부 연구 결과도 있다. 보건 전문가들은 “합성 니코틴 규제에 따른 ‘풍선 효과’로 유사 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 수요가 훨씬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번에도 선제 대응 타이밍을 놓치고 뒤늦게 수습에 나서는 상황이 돼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