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9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미리 밝히지만, 생리대 같은 생필품은 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소득 4만달러를 바라보는 나라에서 생리대가 비싸 못 사는 이들이 있다는 뉴스를 보고 경악한 기억도 난다. N분의 1로 뿌리는 소비 쿠폰이 아니라, 그런 곳에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싼 생리대’를 위한 대통령의 접근법은 잘못됐다고 본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산 생리대 가격이 다른 나라보다 39% 비싸다고 한다”고 질타했다. 지난 19일 생방송으로 진행된 업무 보고 자리였다. 이어 “내가 보기에는 국내 기업들이 일종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해당 기업들은 하루아침에 ‘날강도’가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업체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국산이 39% 비싸다는 이 수치는 소비자원과 같은 국가 기관에서 집계한 통계가 아니다. 한 시민단체가 2023년 만든 보고서에 등장하는 숫자다. 그 단체는 국산 513팩, 그리고 일본·미국 등 11국 총 69팩의 가격을 수집해 비교했다고 한다. 조사 방법을 살펴보니, 적어도 3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 단체는 국산 생리대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두루 수집했다. 서울 영등포 지역 올리브영과 CU, GS25 편의점 생리대 가격도 표본에 들어갔다. 어떤 제품은 온라인에서 개당 110원이었는데, 편의점에서는 167원에 팔 만큼 가격 차가 심했지만 단순하게 평균을 냈다. 반면 외국 제품은 각국의 아마존 사이트에 들어가 판매량이 가장 많다는 제품 가격을 검색했다. 외국은 온라인 것만, 한국은 편의점 것까지 넣었다.

국산 표본 513개 중 거의 절반인 224개가 ‘유기농’이었다. 이 단체는 유기농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26% 정도 비싸더라고 보고서에 적고 있다. 외국산은 유기농 여부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만약 국산 유기농 표본을 쓰지 않았다면, 가격 차가 39%가 아닌 20%대 후반으로 좁혀질 수도 있었다. 설계가 부실한 조사다.

보고서는 라이너, 소형, 중형, 대형, 오버나이트, 팬티형, 탐폰 등 생리대 7종의 가격을 비교했다. 이 중 대형만 따로 떼어 보면 외국보다 6.4% 쌌고, 중형은 3.4% 비쌌다. 가격 차가 그리 크지 않은데도 전체 평균이 치솟은 것은 각 상품군에 가중치를 두지 않고, 동일하게 취급했기 때문이다. 189팩 분석한 중형, 103팩 분석한 대형, 8팩 분석한 탐폰을 같은 선상에 놓았다. 외국보다 53% 비싸다고 집계된 탐폰, 61% 비싼 것으로 나온 팬티형의 가격이 전체 평균을 확 끌어올렸다.

다시 말하지만, 시민단체의 노력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다. 기업들이 독과점으로 부당하게 비싼 값을 받았다면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순서가 잘못됐다. 대통령에게 어설픈 수치가 입력된 뒤, 이를 바탕으로 ‘경제 검찰’ 공정위에 조사 지시가 떨어지는 순간 일이 꼬인다. 이미 생방송을 탔으니 공정위가 “대통령님, 조사해 봤더니 39%까지 비싸진 않습니다”라고 뒤집기도 힘들다. 기업들은 떨 것이고, 관료들은 대통령이 만족할 결과를 만들어내려 안간힘을 쓸 것이다. 정책은 책임질 수 있는 숫자에서 시작돼야 한다.

업무 보고 생방송에 대해 대통령은 “넷플릭스보다 재밌다더라”고 자평하지만, 교통사고 블랙박스 방송을 보는 것처럼 불안하다는 사람도 많다. 외국 생리대 관세를 없애 국산 생리대와 경쟁시키자던 대통령의 이날 언급도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 자유무역협정 때문에 이미 생리대는 상당 부분 무관세다. 수입을 늘려 경쟁을 촉진하려면 무관세 아이디어를 툭 던질 게 아니라, 해당 보고서가 나온 2년여 전보다 10% 넘게 오른 환율부터 안정시켜 수입 가격을 낮출 방안을 찾는 게 우선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