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지수가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엔비디아의 호실적에 힘입어 4,000선을 재탈환했다./연합뉴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도, 경기도 월세에 중소기업 다니는 이 대리도 요즘 모두 같은 꿈을 꾼다. 6월 중순에 삼성전자를 샀다면 두 배를 벌 수 있었다. 5월 중순에 SK하이닉스를 샀다면 3배를 벌 수 있었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코스피지수 앞자리가 2에서 3으로, 3에서 4로 두 번 바뀌는 진기록이 한 해가 다 가기도 전에 세워졌다. 대통령은 코스피 5000을 말하고, 코스피 6000을 말하는 해외 투자은행까지 등장했다. 요즘 주가가 좀 비실비실대긴 해도 주식으로 부자 되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닌 것만 같다.

이렇다 보니 내 계좌만 아직 마이너스면 배가 아프고, 계좌가 플러스이긴 한데 남들만큼 못 벌었으면 비교돼서 또 배가 아프다. 그중에 가장 심각한 복통을 호소하는 건 역시 주식 한 주 없는 이들이다. 우리나라 개인 투자자 인구가 1400만으로 투자 대중화 시대라지만, 3000만 경제활동인구 중에 투자의 세계에 발을 들이지 않은 ‘비(非)개미’가 아직 더 많다. 집 한 채 마련하겠다고 대출 영끌해 투자할 여력이 없어서일 수도, 내 집 마련 막차를 놓쳐서 월세 내느라 빠듯해서일 수도 있다.

급등한 주가에 개미도 비개미도 모두 상대적으로 가난해지는 느낌 ‘포모(FOMO·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데, 포모의 발상지는 역시 자본주의의 본산 미국이다. 주식으로 부자 되는 꿈이 가장 잘 구현될 것 같은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지만, 그곳 현실은 냉엄하다. 미국 주가지수가 지난 100년간 꾸준히 오른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공황, 닷컴 버블 붕괴, 금융 위기 등 크고 작은 부침을 거쳤다. 시장의 급등락은 가진 자를 더욱 부자로, 빈자는 제자리걸음하게 만들면서 격차를 더욱 벌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미국인 상위 1%가 전체 주식 자산의 49.9%를 가졌다. 상위 10%까지 범위를 넓히면 이들의 주식 보유 비율이 87.2%다. 하위 50%가 가진 주식은 1% 남짓. 부자들이 가진 주식이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가는 건 새로울 것 없는 일이지만, 하위 절반의 미국인이 가진 주식이 통계 조사를 시작한 1989년 이래 1%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우리 사정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전체 배당소득의 91%를 상위 10%가 가져갔다. 하위 80%의 소액 투자 개미들은 1인당 연 8만원 수준의 배당금을 챙겼을 뿐이다. 정부가 배당소득세 인하를 연료 삼아 주가 군불을 때고 있지만, 애초 주식 자산을 많이 가져야 감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많은 학자가 연구를 통해 밝혀냈듯 돈이 돈을 부른다. 투자할 여윳돈이 많을수록 더욱 부자가 되고 부의 불평등이 심화하는 현상은 이제 계층 문제만이 아니라 세대 문제도 낳고 있다. 똘똘한 직장을 잡는 것조차 버거워진 젊은 층은 어렵사리 근로소득을 마련한다 해도 학자금과 주택 담보 대출 갚느라 주가 랠리에 동참하기가 빠듯하기 때문이다.

‘하위 50%·1% 법칙’이 미국서 37년간 깨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의 용감한 개미들은 이달에만 십시일반 한국 주식시장에 10조원, 미국 시장에 5조6000억원 넘는 기록적인 순매수를 쏟아부으며 발버둥친다. 때마침 경제 책임자들은 ‘빚투도 레버리지’라며 유혹한다.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 조국 전 조국혁신당 비대위원장이 서민을 가리키는 의미로 처음 썼다)도 빚내 크게 베팅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 고문에 다름 아니지만, 어차피 주식 말고는 남은 사다리도 없다. 아무쪼록 가붕개들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