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으로 김건희 특검 조사를 받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양평군청 사무관 측 박경호 변호사가 지난달 14일 특검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 앞에서 기자회견 열고 있는 모습. 박 변호사 뒤로 '살인 특검'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뉴시스

검찰의 횡포를 생생히 기억한다. 2011년 봄, 경북 경산시청 한 사무관이 검찰 조사를 받은 지 사흘 만에 주검으로 발견됐다. “검사가 뺨을 때리고 가슴을 쥐어박았다” “제대로 진술하지 않으면 10년 이상 구형하겠다고 했다” 등 충격적인 내용의 유서 25장을 남겼다. 조사받은 다음 날 이비인후과에서 “귀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난다”며 고통을 호소했고, 직장 동료들에게는 “진단서 떼 검사를 고소할까?”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대검찰청은 곧 감찰에 착수했고, 50여 일 뒤 그 검사를 입건해 정식 수사로 전환했다.

그러나 조사가 진행되자 필자가 취재한 사람들의 증언이 하나둘 바뀌기 시작했다. 숨진 사무관의 지인은 “질문 하나 해놓고 30분씩 시간을 끌어 너무 답답했다. ‘원하는 답이 있냐’고 되물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지인은 “‘진짜 맞았다고 생각하느냐’ 같은 질문만 되풀이해 괴로웠다”고 했다. 서너 차례 조사받은 직장 동료는 “더는 시달리기 싫어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을 착각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며 울먹였다. 두 달쯤 지나 대검은 “유서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며 검사를 무혐의 처분했다. 폭력을 또 다른 폭력으로, 가해를 2차 가해로 덮은 격이다. 이런 무소불위 권한을 휘두르던 것이 오늘날 검찰이 ‘폐지 단계’로 내몰린 이유다.

현 정부와 거대 여당이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로 힘을 실어주자, 경찰 수사도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지난 8월 한 달 동안 전북경찰청에서만 수사받던 피의자 3명이 잇따라 숨졌다. 재개발 조합 비리 의혹으로 수사받던 60대는 경찰의 압수 수색 중 투신했고, 간판 정비 사업 비리 혐의를 받던 40대와 성범죄 혐의 30대도 결국 생을 마감했다. 경찰은 늘 그렇듯 ‘셀프 조사’로 몇몇을 경징계하는 선에서 사건을 무마할 참이다.

검찰을 믿지 못해 출범한 특검도 폭력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지난달 10일 김건희 여사 가족의 특혜 의혹으로 민중기 특검의 조사를 받은 양평군청 사무관 또한 강압 수사를 폭로하는 메모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장에서 21장짜리 유서가 발견됐는데, 경찰은 직접 썼는지 확인하겠다며 필적 감정을 맡겼다. 유족 반대에도 부검을 강행했지만 타살 흔적은 없었다. 공교롭게도 이 사무관을 조사한 수사관은 특검에 파견된 경찰 3명이었고, 수사팀장은 양평경찰서장 출신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특검은 ‘자체 조사’에서 ‘감찰에 준하는 진상 조사’, 나아가 ‘정식 감찰’로 수위를 높였지만 “강압 수사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숨진 사무관 측 변호사의 조서 열람 요구는 “피의자 사망으로 변호인 자격이 종료됐다”며 거부했다.

결국 이 사건도 특검의 ‘잘못 없음’으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유서는 자기 죄를 덮으려는 망자(亡者)의 거짓말로 치부되기 쉽다. 부정적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으면 한발 물러나 ‘증거 불충분’으로 마무리할 수도 있다. 검찰, 경찰, 공수처, 특검 할 것 없이 수사기관이 제 잘못을 스스로 수사하면 대부분 이런 식으로 종결된다.

세월이 흘러도, 기관이 바뀌어도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보면, 수사기관의 폭력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위험한 속성일지도 모른다.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수사 구조의 새 판을 짜고 있다. 그러나 개혁 성공은 검찰을 폐지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경찰·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등 이름만 바꾼 또 다른 권력 괴물이 탄생하지 않도록 법과 제도로 단단한 통제 장치를 만드는 일이 먼저다. 그러지 않으면 이 죽음의 행진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