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5일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확정·발표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뉴스1

집값의 60% 넘게 빌릴 수 없다는 LTV(주택 담보대출 비율) 규제는 2002년 시행됐다. 김대중 정부 후반,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4억원까지 올랐을 때다. 당시 은행들은 집값의 85% 안팎까지 빌려줬는데 그 비율을 확 깎은 것이다.

LTV 규제는 그 나름대로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돈을 과도하게 빌려준 뒤, 대출자가 제때 못 갚으면 경매로 넘겨 매몰차게 회수하던 일부 금융사 행태가 지탄받는 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LTV 규제는 집값을 잡지 못했다. 돈을 적게 빌려준다고 해서 집 수요가 줄진 않았다. 동탄 4만 가구와 판교 3만 가구 외엔 이렇다 할 물량 투입 없이 다주택자 양도세를 강화해 공급을 줄인 정책은 집값을 계속 밀어 올렸다.

노무현 정부 후반인 2006년, 연봉에 맞춰 대출액을 제한하는 DTI(총부채 상환 비율) 규제가 도입됐다. 시가 6억원 아파트를 사려는 연봉 5000만원 직장인의 대출액을 3억6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줄였다. 소득이 낮을수록 대출액이 줄어, 부동산 정책 실패를 서민에게 떠넘긴다는 비판이 나왔다. 정부는 “갚을 수 있는 능력만큼 돈을 빌리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는 원칙론을 앞세웠다.

이후 정부의 부동산 대출 규제는 ‘능력만큼 빌려라’를 기조로 삼았다. 예외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일부 투기 지역 내 15억원 이상 주택 담보대출 금지라는 악수를 뒀지만, 2년 만에 항복 선언을 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직후 내놓은 ‘수도권 무조건 6억원까지만 대출’이라는 기계적인 6·27 규제에도 그 나름의 원칙이라는 게 있었다. “6억원을 30년 만기로 대출받으면 원금과 이자로 월평균 300만원 정도씩 갚아야 한다. 월 상환액 300만원이 평범한 직장인이 감당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며 정부는 자신들의 정책을 변호할 수 있었다.

이번 10·15 규제는 그동안 지켜온 원칙을 무력화했다. 수도권과 규제 지역의 집값이 15억원 넘으면 4억원, 25억원 넘으면 2억원만 빌려주게 하겠다는 정책은 대출자의 상환 능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결국 일반 중산층의 주거 상승 사다리를 끊어 놓을 것이다. 지난달 서울 종로구 경희궁자이(84㎡)는 25억원 넘는 가격에 거래 신고됐는데, 앞으로는 대출액 2억원을 뺀 23억원을 현금으로 내야 한다. 이달 양천구 목동12단지(56㎡)는 18억원이었는데 이제 대출액 4억원을 뺀 현금 14억원이 있어야 살 수 있다. 그런 현금 동원력이나 사적인 대출 수단을 가진 직장인이 몇이나 되겠나.

앞으로 얼마간 거래 동결 이후, 시장에 나올 고가 아파트는 서울 현금 부자나 지방 부호의 자제들이 차지할 것이다. 결국 25억원 이상 주택은 ‘현금 시장’, 15억원 아래 주택은 ‘대출 시장’이라는 구조가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아파트 대출 기준 가격을 자의적으로 15억원과 25억원으로 정한 이 규제는 시장을 계속 교란할 것이다.

유독 현 정부는 금융 원칙을 허물려 한다. “초우량 고객에게 0.1%포인트만이라도 (이자) 부담을 더 지워 어려운 사람들에게 좀 더 싸게 빌려주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언급이 대표적이다. 아껴서 꼬박꼬박 돈 갚아온 평범한 사람들에게 ‘당신은 성실하니까 앞으로 이자 좀 더 내라’고 한다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10·15 규제도 다를 게 없다. 능력만 있으면 은행 돈을 빌릴 수 있다고 믿던 직장인·청년들을 하루아침에 바보로 만들었다. 대출을 좀 더 일찍 받았더라면 15억원 넘는 아파트를 충분히 살 수 있던 이들의 낭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원칙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이 쏟아지는 이런 규제와 그에 따른 고통을 왜 다시 감내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