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성덕대왕신종이 지난달 24일 시민 앞에서 다시 울렸다. 22년 만이었다. 1254년을 이어온 깊은 울림의 종소리도 감동적이었지만, 이날의 진짜 주인공은 청중들이었다. 네 번째까지 1분 30초 간격으로, 이후 1분 간격으로 12번 종이 울리는 동안 종각 주위에 모인 771명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귀뚜라미 소리만 옥음(玉音)과 함께 울려 퍼졌다.
에밀레종으로 알려진 성덕대왕신종은 국립경주박물관 야외 종각에 걸려 있다. 높이 3.66m, 무게 18.9톤에 달하는 우리나라 최대(最大)의 종이다. ‘미인도’의 치맛자락처럼 봉긋한 곡선, 몸통에 새긴 연꽃무늬와 구름 타고 날아오르는 비천상의 자태도 아름답지만, 성덕대왕신종이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건 ‘주변 100리(40km)까지 퍼졌다’는 웅장하고 신비한 소리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1992년 제야의 종소리를 끝으로 정기 타종이 중단됐다. 1976년 국보 상원사 동종에 균열이 발견돼 타종이 멈춘 데 이어 3년 뒤 옛 보신각종에도 균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성덕대왕신종도 이대로 계속 치다간 손상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는 “과학적 검토도 없이 혹시나 하는 우려 때문에 중단됐다”고 했다.
종을 칠 것인가, 말 것인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팽팽했다. 타종을 반대하는 이들은 “한번 깨지면 돌이킬 수 없다”고 우려한다. “박물관 유물이니 예술품으로 감상하면 된다”는 의견도 있다. 반면 찬성하는 이들은 “성덕대왕신종은 박제된 예술품이기 이전에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타악기”라며 “종은 울리지 않으면 생명력을 잃는다”고 맞선다.
박물관은 1996년, 2001~2003년, 2020~2022년 세 차례에 걸쳐 타음 조사를 했다. 다행스럽게도 과거 2001~2003년 조사와 최근 2020~2021년 측정 결과에서 고유 주파수, 맥놀이 특성이나 맥놀이의 방향성에서 변화가 없었다. 내부적으로 소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적 변화(균열)가 없었다는 뜻이다.
1254년을 파손 없이 맑은 원음을 지킬 수 있었던 기적의 비밀은 뭘까. 세 차례 조사에 모두 참여한 김석현 강원대 교수는 “당좌(撞座·종을 칠 때 막대가 닿는 자리)의 위치가 절묘하게 ‘스위트 스폿(타격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며 “그 옛날 어떻게 이토록 정확하게 당좌의 높이를 정했는지 놀라울 정도”라고 했다. 야구나 골프에서 스위트 스폿을 때리면 공이 멀리 뻗어 나가는 것처럼, 종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장중한 소리가 울려퍼질 수 있었다는 얘기다.
반면 상원사 동종은 몸체가 성덕대왕신종의 15분의 1 규모인데도 당목(종 치는 막대)이 상대적으로 컸고, 1970년대 초까지 상원사에서 지속적으로 타종했기 때문에 탈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 옛 보신각종은 다수의 인원이 종의 하대 부분을 타격한 타종 방법이 종의 수명을 단축시켰을 것이라 봤다. 오충석 국립금오공과대학교 교수는 “같은 힘으로 치더라도 하대에 가했을 때는 종이 받는 응력이 당좌를 타격했을 때보다 50% 증가했다”며 “하대 부분을 타종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다. 성덕대왕신종은 당목의 크기와 질량, 당좌의 위치, 타종 세기 및 방법 등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 잘 보존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야외 온습도 변화에 노출돼 있고, 태풍·지진·화재 등에 취약하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박물관은 종을 보존·전시할 신종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그러니 이제 해묵은 논란을 끝내도 좋지 않을까. 20년에 걸친 과학적 조사 결과가 쌓였고, 보존 방법에 대한 해답을 얻은 만큼 정기 타종을 재개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반가사유상의 미소처럼 천년의 종소리를 더 많은 사람이 더 자주 듣고 번뇌를 씻어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