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최근 발표한 ‘6대 국정 과제’를 보고 한숨이 나왔다. 교육 문제에 무관심한 정부라 기대는 안 했지만 ‘역시나’였다. 지방 국립대 9곳에 예산을 쏟아붓겠다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빼면, 대부분 기존 정책을 재탕한 수준이었다. 이런 부처에 대한민국의 미래 인재를 맡길 수 있을까.
가장 실망스러운 건 ‘AI 디지털 시대 미래 인재 양성’이었다. 사회 모든 분야가 AI(인공지능) 혁명으로 급변하는 지금, 나라의 명운을 걸고 덤벼야 할 주제다. 그런데 ‘학교 AI 교육 강화’ ‘AI 인재 양성 지원’같이 막연하고 추상적인 목표만 나열할 뿐이었다. 학교 현장에는 컴퓨터를 가르칠 정보 교사조차 부족한데, 어떻게 모든 학생을 AI 인재로 키운다는 말인가.
더 황당한 것은 ‘학습 데이터 활용 체계를 구축해 미래 교육 시스템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대목이었다. 지난 정부는 개인 맞춤 교육을 위해 수천억 원을 투입해 ‘AI 디지털 교과서(AIDT)’를 만들었다. 학생들이 AIDT를 사용하면 학습 이력이 자동으로 데이터로 쌓이고 이걸 AI가 분석해 저마다 수준에 맞는 자료와 피드백을 주는 게 핵심 기능이다. 많은 전문가가 학력 격차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그런데 현 정부와 여당은 집권하자마자 AIDT를 ‘교육 자료’로 격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자 AIDT를 사용하는 학교는 이번 학기에 절반으로 줄었다. 수천억 원짜리 AIDT는 제대로 못 쓰게 하고 다시 비슷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니, 세금 낭비를 넘어 국민 기만이 아니고 무엇인가.
시·도교육감들의 행태도 가관이다. AIDT가 교과서 지위를 잃으면서 학생들이 사용하려면 학교나 교육청 예산을 지원받아야 한다. 그런데 보수 성향 교육감들은 예산을 지원하고 진보 교육감들은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이 원해도 교육감이 친여 성향이면 AIDT를 사용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교사들의 정당 가입 등 정치 활동을 허용하는 법안까지 처리하겠다고 한다. 교육 현장이 정치 논리에 볼모로 잡힌 진흙탕이 돼버렸다.
디지털 교과서를 본격 추진한 건 2007년 노무현 정부였다. 사회 변화에 맞게 교과서 내용을 적시에 보완하고, 수준에 맞는 개별 학습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는 명확했다. 이후 디지털 교과서는 여러 정권을 거치며 보완됐고, 지난 정부는 AI 발전과 함께 대대적으로 추진했던 것이다. 18년 전 그 목표는 지금 더 절실해졌는데, AIDT를 퇴출한다니 시대에 역행하는 무책임한 결정이다.
정권이 바뀌면 전임 정부 정책이라는 이유로 폐기되는 것이 많다. 하지만 교육 정책은 뒤집으면 그 피해가 너무 크다. 학생 대상 정책들은 민감해서 도입 자체가 쉽지 않고, 도입된 뒤에도 모든 학생에게 적용하는 데 오래 걸린다. 지난 정부가 AIDT를 서둘러 도입한 측면도 있긴 하다. 하지만 사용해 보고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지, 효과를 평가하기에도 부족한 6개월 만에 백지화하나.
AI가 인류에 당장 도움이 될 분야로 ‘의료’와 함께 ‘교육’이 꼽힌다. 사교육비는 갈수록 치솟고, 공교육 붕괴라는 말이 나오는 한국 교육 시스템이야말로 첨단 기술로 혁신해야 할 분야다. ‘AI 3대 강국’을 목표로 내건 정부라면 더더욱 외면해선 안 된다. 원하는 학생들은 자유롭게 AIDT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