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마두로 대통령 정부가 시작한 국가 모집 캠페인 현장에서 한 대통령 의장대원이 후고 차베스 전 대통령 초상이 그려진 현수막 앞에 서 있다. /EPA연합뉴스

주가지수가 하루에 99.9% 폭락한 나라가 있다. 이 정도면 나라 망하는 수준인데도 아무렇지 않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 사실에 별 관심이 없는지 관련 보도를 찾아볼 수가 없다.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일도 더는 놀랍지 않은 세상이 됐다. 베네수엘라 증권거래소는 지난 7월 25일 53만2713포인트로 마감한 대표 지수 IBC를 다음 거래일에 532.71포인트로 놓고 거래를 시작했다. 지수를 1000분의 1만큼 낮추는 일종의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화폐 단위 변경)’을 단행한 것이다.

한때 세계 4위 부국이던 베네수엘라가 후진국으로 추락한 스토리는 세계인이 안다. 석유 의존도 과다, 정권 부패, 포퓰리즘을 앞세운 좌파 정권의 경제 정책 실패 등 구조적 문제가 누적돼 이제는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는커녕 4000달러에도 못 미친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은 현재 진행형이다. 2018년 13만%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은 후 화폐 개혁으로 물가가 잡히는 듯했지만, 올해 다시 물가 상승률이 200% 넘게 치솟고 있다.

인플레는 주가도 폭등시켰다. 가진 현금이 휴지 조각이 되는 걸 지켜본 현지인들은 주식·부동산 같은 실물 자산을 사 모았다. 2018년 주가 상승률이 무려 7만%를 넘었다. 올해도 주가는 500% 넘게 올라 지수 조정을 했는데, 한 달 만에 다시 47% 급등한 상태다. 하지만 이 나라 개미 누구도 부자가 됐다거나 행복해졌다 말하지 않는다. 자국 화폐 볼리바르 가치는 달러 대비 반 토막이고, 이 나라 국민의 삶의 질은 오늘도 후퇴하는 중이다.

베네수엘라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면 혹시라도 지금 우리가 그 초입에 있는 건 아닐까 두려운 마음이 든다. 8조7000억원어치 1차 민생 회복 소비 쿠폰이 뿌려진 지 한 달이 지나자, 많은 사람이 2차 쿠폰을 기다리고 있다. 자영업자들도 “반짝 장사 잘되더니 도로 제자리”라고 아우성이다. 재정 헐어 돈 뿌리니 쓸 돈이 없어서 법인세를 올리기로 했다. 대법원이 유료화가 맞다고 손들어준 일산대교는 다시 무료화가 추진된다는 소리마저 들린다. 2021년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대선 나가려고 지사직을 던지며 마지막으로 결재한 게 ‘민자 사업 일산대교’ 전면 무료화였다. 노동자가 불법 파업을 하더라도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도 결국 명문화됐다.

민주당 대선 캠페인 전면에 등장했던 ‘코스피 5000’ 공약이 이번 정부 내내 족쇄가 될 분위기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 나와, ‘코스피 5000 목표를 포기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 그 이상 갈 수 있다”고 답했다. 주가는 국정 운영의 결과물일 뿐 그 자체로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경제와 괴리돼 주가만 고공 행진하는 게 어느 나라처럼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건전한 상식을 가진 국민이 바라는 일은 아닐 것이다.

돌아보면 크고 작은 부침 속에서도 미국 증시는 100년간 꾸준히 올랐다. 혁신을 멈추지 않은 기업들이 벌어들인 이익이 쌓이고 쌓인 위에 세계 투자자들의 기대가 보태진 결과다. 지금은 우리 기업들 곳간에 나눠 줄 게 좀 있는지 모른다. 지나치게 인색했던 기업 중엔 배당도 이전보다는 많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모두가 거위 배를 가르고 황금 알을 빼 먹으면, 그다음은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은 있나. 단 한 번 주가가 목표치를 찍으면 그다음은 어떻게 돼도 상관이 없나. 떼돈을 벌고 있는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기업들의 벌이는 작년보다 뒷걸음질 치는 중이다. 펀더멘털이 아닌 유동성으로 만드는 5000포인트는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그 구호는 접어두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