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이 지난 20일 참의원 선거를 계기로 대전환점을 맞았다. 창당 70년 만에 처음, 양원(兩院) 소수 여당으로 전락해 자칫하면 정권도 빼앗길 위기다. 사실상 일당 체제였던 일본은 이제 소수 당이 창궐하는 다당제 시대를 목도하게 됐다. 자민당은 어쩌다 몰락의 길목에 섰나.
“월급 빼고 다 오르는데 현실적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파티로 비자금 모으고, 동료 의원에게 상품권이나 뿌리는 구태의연한 정당.” 최근 일본 유권자들이 자민당에 실망한 이유다. 하지만 아무리 한물간 자민당이라도, 이번 선거에서 승기를 잡을 방법이 없진 않았다. 다른 야당들처럼 다수가 좋아할 공약을 던지면 됐다. 가장 효과적인 게 ‘소비세 인하’였다. 고물가에 지친 일본인 80%가 소비세를 낮추는 데 찬성하고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급부상한 참정당을 포함한 모든 야당이 소비세 인하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이시바 시게루 총리만은 표가 뚝뚝 떨어지는 게 보이는데도 ‘절대 불가’ 원칙을 고집했다. 그러면서 “우리 재정이 그리스보다 안 좋다”고 해 미움을 더 샀다.
집권 여당, 국가 지도자로서 최소한의 책임감이었을 것이다. 실제 일본 정부 재정은 한계의 한계에 다다랐다. 누적 정부 부채는 우리 돈 1경원으로 GDP의 2배, 부채 비율(235%)은 아프리카 수단 다음으로 높다. ‘저축 부자’인 개인들을 믿고 국채를 부담 없이 발행해온 결과다. 이제는 국가 신인도를 걱정해야 할 수준이다. 사회보장 재원의 60%를 차지하는 소비세를 포기하고, 빚을 더 늘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법인세를 올려 적자를 메울 수도 없다. 미국의 관세 부담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기업 투자를 꺾는 자살골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야당들도 이번 선거에서 법인세는 건드리지 않았다. 갈수록 팍팍하고 고달픈 국민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별로 없는 집권당. 이것이 바로 자민당이 처한 현실이고, 몰락의 이유다.
하지만 누굴 탓할까. 나라 재정이 파탄 난 건 자민당의 자업자득이다. 지난 70년 중 5년을 제외한 기간을 집권한 자민당은 선거를 앞두거나 지지율이 떨어질 때마다 각종 선심성 복지 ‘바라마키(퍼주기)’를 확대해왔다. 1990년 버블 붕괴, 2008년 리먼 쇼크, 2020년 코로나 팬데믹 같은 위기 땐 경기 부양 명목으로 불필요한 공공 지출·사회보장을 크게 늘렸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금융 완화·재정 확대·구조 개혁이란 ‘세 개의 화살’을 쏘아 올렸던 아베노믹스(2012~2020)도 마찬가지다. 당시 자민당은 경기 침체 시 정부가 적극 재정주의로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케인스주의 기본에 충실했지만, 경제가 회복된 뒤엔 허리띠를 졸라매는 긴축을 통해 재정을 흑자로 돌려놔야 한다는 케인스 이론의 또 다른 원칙은 무시했다. 고령화에 따른 경제·노동 구조의 변화, 한국과 중국의 부상에 따른 필연적 저성장으로 흑자로 돌릴 능력이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뷰캐넌은 일찍이 ‘적자 민주주의’(Democracy in Deficit) 이론을 통해 민주주의 정부가 어떻게 만성 재정 적자에 빠지는지 분석했다. 집권당이 유권자의 표심과 단기 성과에 집착하면서 재정 확장이 상시화되고, 재정 건전성이 구조적으로 망가진다는 것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저성장 초고령사회를 먼저 겪고 있는 닮은꼴의 나라다. 그래서 한국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도 한다. 최근 추경을 통해 대통령 당선 기념 선물처럼 뿌려진 민생 회복 소비 쿠폰, 뒤이어 나온 법인세 인상 추진 소식이 꺼림칙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