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말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보도된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사람은 나를 한국의 트럼프라고 부른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나를 보고 트럼프 닮았다는 사람들이 있다.” 작년 말, 민주당 대표 시절 이재명 대통령이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WSJ는 두 사람의 뜨거운 팬덤, 활발한 SNS 활동, 사법 리스크가 닮았다고 했다. 이후 공통점이 하나 더 늘었다. ‘스테이블 코인’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생소한 스테이블 코인일까. 어려운 나라 재정 상황을 슬쩍 감출 수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스테이블 코인은 중앙은행이 아닌 일반 금융사·법인·스타트업이 디지털 형태로 발행하는 화폐다. 마찬가지로 원화 스테이블 코인도 한국은행이 아닌 시중은행 등 기업들이 만들 예정이다. 예를 들어 카카오가 ‘카카오 코인’을 만들어 마치 한국은행이 찍는 1만원·5만원짜리 ‘한국은행권’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식이다. 최근 카카오가 ‘카카오 코인’ 발행 준비 작업으로 카카오의 ‘K’와 한국 원화를 뜻하는 영문 ‘KRW’를 합쳐 ‘KKRW’ 등을 상표권 등록해둔 이유다.

KKRW가 돈 대접을 받으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KKRW를 가진 사람이 카카오 측에 “다시 1만원권 현금으로 바꿔 달라”고 하면 카카오는 이 요구에 무조건 응해야 한다. 응하지 못하는 KKRW는 휴지보다 더 쓸모없다. 유사시 현금으로 돌려주기 위해 카카오는 KKRW를 발행할 때 같은 물량의 원화나 한국 국채를 쌓아 미리 대비해 둬야 한다. 카카오 입장에서 현금으로만 쌓아 놓으면 수지가 맞지 않으니, 이자를 챙기기 위해 주로 한국 국채를 사 둘 것이다.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스테이블 코인의 거의 대부분인 달러 코인의 메커니즘도 비슷하다. 시가총액이 가장 많은 코인인 ‘테더’는 발행량의 3분의 2 정도의 돈을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사서 보관해 두는 데 쓴다. 안 그래도 살림살이가 빡빡해 국가 빚 증서인 국채를 찍어 연명하는 미국 정부 입장에서 테더는 국채를 왕창 사 주는 VIP다.

미 재무부는 3년 뒤 전체 스테이블 코인 시장이 8배로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 전망이 맞다면 트럼프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1조달러가량의 미 국채를 코인 발행사에 팔아치울 수 있게 된다. 미 국채를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 국채 가격이 오르고, 국채 금리는 떨어진다. 한 해 국채를 2조달러쯤 순발행해 이자를 줘야 하는 미국 재정에 큰 보탬이 된다.

한국 재정도 미국처럼 한숨 나오기는 매한가지다. 2019년부터 작년까지 국세·지방세 수입이 67조원(17%) 늘어났는데, 나라 씀씀이는 132조원(33%) 증가했다. 구멍 난 재정을 국채를 찍어 메우고 있다. 국민연금, 생명보험사 등 그동안 한국 국채를 사줬던 큰손 대열에 코인 발행사가 새로 합류하면 그나마 숨통이 트이고 금리도 안정된다.

하지만 약발은 오래가지 않는다. 스테이블 코인이 시중에 풀리는 것은 돈이 풀리는 것과 같다. 돈값이 떨어지면 물가는 오르고, 결국 금리도 오른다. 만약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가 휘청거린다 싶으면 사람들은 환매를 요구할 것이다. 코인 발행사는 그 요구에 응하기 위해 국채를 서둘러 처분해야 하고, 결국 국채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는 오른다. 결국 재정에 이자 부담 증가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Midjourney

부양의 효과는 당대에 그치고, 부작용은 후대에 전가된다. 벌써부터 한 관료는 “이 정부의 스테이블 코인이 앞선 정부의 태양광판처럼 번듯한 기업 하나 못 키워 내면서, 국가 보조금에 혈안이 된 업자들 놀이터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새겨듣기 바란다. 어중이 떠중이가 화폐 발행권으로 장난칠 수 없도록, 정부가 스테이블 코인 제도화에 더 신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