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최근 대중(對中) 반도체 봉쇄를 보면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옛 소련이 독자적인 반도체 산업을 일으켰다면 세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물음이다. 역사엔 가정법이 없다지만, 그 답을 찾아 냉전 초기와 겹치는 반도체 태동기를 들여다보면 미국이 지독하게 중국을 막아서는 맥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소련은 1957년 인류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리고 1961년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까지 성공하며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거칠 게 없는 기세였다. 국가적 자존심 회복에 나선 미국은 아폴로 프로젝트와 대륙간탄도미사일 미니트맨2 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잭 킬비, 페어차일드의 로버트 노이스가 1958~1959년 개발한 반도체 집적회로였다.

당시 소련도 미국의 집적회로 개발 소식을 접하고, 그 군사·산업적 파급력을 눈치챘다. KGB 스파이들이 미국에서 집적회로 실물과 기술을 빼돌렸고, 소련 정부는 흐루쇼프의 지지 아래 일류 물리학자들을 ‘소련판 실리콘밸리’ 젤레노그라드에 한데 모아 개발에 나섰다.

결론부터 말하면 소련은 독자적 반도체 시대를 열지 못했다. 미국의 반도체 개발부터 미·중 반도체 전쟁까지를 담은 ‘칩 워(Chip War)’의 저자 크리스 밀러 미 터프츠대 교수는 소련의 패착으로 ‘베껴라!(Copy it) 전략’을 꼽는다. 반도체 집적도가 18~24개월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을 소련 과학자들이 간과했다는 것이다. 특정 시점의 반도체를 모방했다고 해도 그사이 미국의 반도체 기술이 무어의 법칙에 따라 집적도 면에서 이미 저만치 앞서가 격차가 갈수록 벌어졌다는 것이다. 냉전의 승패는 사실상 여기서 갈렸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미국은 이후 텍사스인스트루먼트·페어차일드·인텔이 일궈낸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값싸고 질 좋은 인력을 갖춘 일본·대만·싱가포르·한국으로 제조 공급망을 확장하며 반도체 동맹을 구축했다. 동독을 빼면 기술력을 갖춘 우군이 없었던 소련은 적색 반도체 공급망은커녕 국내에 변변한 반도체 제조 업체 하나 갖지 못하고 무너졌다.

냉전 초기 소련의 핵과 재래식 전력은 미국을 압도했다. 만약 소련이 이런 무기에 반도체와 컴퓨터를 장착하고, 각 공장과 집단농장에 반도체가 들어간 설비를 보급하는 데 성공했다면 미·소 체제 경쟁은 21세기까지 지속됐을지 모른다.

냉전의 기억이 생생한 미국을 적색 반도체 공급망으로 다시 위협한 게 ‘중국몽’을 앞세운 시진핑의 중국이다. 중국은 거대한 자국 시장을 앞세워 대만 TSMC, 미국 인텔,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의 생산라인을 유치했고 야심 찬 반도체 자립 계획을 선언했다. 그런 자신감을 상징하는 존재가 화웨이였다. 미 제재 전까지 화웨이는 애플과 함께 TSMC의 양대 고객이었다. 인구로 치면 두 유럽, 두 일본에 맞먹는 자국 시장에서 중국 정부와 군부의 후원 아래 주문 물량을 급속히 늘린 덕분이었다.

미국에게 반도체의 역사는 곧 냉전의 역사였다. 민간에선 반도체가 뭔지도 모를 때 미 국방부는 소련을 겨냥한 첨단 무기와 우주 로켓 개발로 당장 수요처가 없던 미 반도체 기업들을 먹여 살렸다. ‘실리콘밸리를 키운 건 펜타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 미국으로선 반도체를 바탕으로 미국 추월을 꿈꾸는 중국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 중국 전문가인 마이클 필즈버리는 미국을 넘어서려는 중국의 전략을 ‘백년의 마라톤’이라고 했다. 미·중 반도체 전쟁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기업 차원이 아닌 국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