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발(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집값이 내림세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하는 주간 아파트 값 통계는 매주 역대 최대 하락 폭을 경신 중이다. 과도한 대출로 집을 산 ‘영끌족’은 원리금 상환액이 급증하면서 ‘하우스 푸어’가 될 위기다. 집값이 떨어지니 재산세 같은 세금 내기가 더 버겁다는 사람이 많다. 올해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이 되는 아파트 공시가격은 작년보다 평균 17% 넘게 올랐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 4일 공시가격 현실화 개편 공청회에서 “지난 정부의 목표처럼 공시가격을 시세의 90%까지 끌어올리면, 집값 하락기에 시세와 역전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미 시장에선 실거래 가격이 공시가격보다 낮은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대단지 아파트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말 18층 매물이 17억9500만원에 팔렸다. 작년 말 실거래가가 25억원에 육박했던 이 단지의 올해 공시가격은 18억원 안팎이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한 아파트(전용 84㎡)는 9월 말 작년 시세의 절반 정도인 8억원에 거래됐다. 올해 이 아파트 공시가격은 10억원이 넘는다.
무주택자의 설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지난 정부 때 미친 듯이 오른 집값은 1주택자에도 그리 달갑지 않았다. 5억원 하던 아파트 시세가 10억원으로 올랐는데, 10억원짜리 집은 20억원이 됐다. 내 집 팔아봐야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기 어렵다. 더 좋은 집은커녕 같은 시세의 집으로 ‘갈아타기’조차 안 된다. 집값 올라서 내 주머니에 들어온 돈은 한 푼도 없는데, 세금만 잔뜩 늘었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재산세와 종부세 등 주택 보유세 납부액이 배(倍) 이상 오른 가구가 부지기수다.
집값 상승과 급격한 공시가격 인상에 따른 1주택 실수요자의 세금 부담은 지난 3월 대선 때 주요 이슈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보유세 부담 완화를 핵심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당시 여당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과도하고 급작스러운 집값 상승으로 고통받는 실수요자에게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했다. 대선이 끝나고 정부는 “작년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올해 재산세와 종부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재산세는 동결되고, 종부세도 거의 오르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지방선거를 의식한 민주당은 “1주택자의 부담을 덜어주려면 동결이 아닌 2년 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게 마땅하다”고 거들었다.
선거가 끝나자 실수요자의 보유세 감면 이슈는 정치권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작년 공시가격으로 올해 보유세를 매긴다던 정부 계획은 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 논의가 지연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새 정부가 1주택자를 위해 한시적으로 종부세 비과세 기준을 11억원에서 14억원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새로 제시했다. 이 역시 야당인 민주당이 “부자 감세”라며 반대하면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무산됐다. 종부세 감면을 기대했던 공시가격 11억~14억원 주택 보유자 9만3000여명은 “정치권으로부터 ‘희망 고문’만 당했다”며 허탈해했다.
국세청은 이달 종부세 납부 대상자에게 세금 고지서를 보낸다. 지난해 102만여 명으로 사상 처음 100만명이 넘었는데, 올해는 대상자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공시가격의 ‘시세 역전’이 현실로 나타난 시장 상황은 작년보다 더 강한 ‘조세 저항’을 불러올 분위기다. 1주택자 종부세 감면 외에도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위해 국회가 법적 뒷받침을 해야 할 정책이 많다.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 전 그토록 강조하던 “실수요자 보호” 구호가 얄팍한 표 계산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