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방'에 나란히 앉은 두 국보 금동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국박)에 있는 ‘사유의 방’ 누적 관람객이 최근 53만명을 돌파했다. 사유의 방에는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으니 1년 사이에 우리 국민 100명 중 1명이 다녀간 셈이다. 53만명이라는 숫자는 평소 박물관과 담쌓고 지낸 사람들까지 잡아당겼다는 뜻이다. 무료 상설전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2006~2007년 ‘루브르박물관전’을 뛰어넘은 국박 최고 흥행 기록이다.

어떤 시기에 어느 예술 작품이 새로 인기를 얻었는지 살펴보면 그 시대의 특수한 불균형을 이해할 수 있다. 영화든 소설이든 미술이든 대형 베스트셀러는 이 사회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 가늠하게 해준다. 2014~2015년 미술 시장에서 한국 단색화(單色畵)의 몸값이 갑자기 치솟을 때 컬렉터들은 “싸우지 않는 그림이라는 게 매력”이라며 “벽에 걸었을 때 다른 그림과 충돌하지 않고 동양의 여백과 너그러움이 느껴진다”고 입을 모았다. 당대의 결핍이자 요구였던 것이다.

사유의 방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반가사유상들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번갈아 전시하는 바람에 한 점은 늘 수장고에 있었을 뿐이다. 국박은 반가사유상 두 점을 나란히 전시하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면서 처음으로 건축가, 미디어 아티스트와 함께 그 상설 공간을 소극장처럼 디자인했다. 입구에는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고 적었다. 그러자 반가사유상들이 마치 특별한 경험처럼 말을 걸어왔다. 우리가 예술품을 재발견한 셈이다.

'사유의 방' 입구에 적힌 문구

사유의 방은 국박 전시실 중 유일하게 경사(1도)가 있는 공간이다. 시야의 소실점에 반가사유상이 자리 잡고 있다. 관람객들은 극적인 오르막을 느끼며 두 주인공에게 다가가고 사진을 찍는다. 반가사유상들은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가볍게 얹고 오른손을 살짝 뺨에 기댄 채,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단순한 호기심부터 근심이나 불안, 또는 희망을 끌어안고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이 반가사유상 주변에 둥글게 모여 눈과 귀를 활짝 연다. K팝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다.

수녀들도 다녀갈 만큼, 반가사유상은 종교를 초월한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감상들을 보면 “1400년을 견딘 반가사유상의 온화한 미소를 보고 위안을 받았고 평온을 찾았다”는 후기가 많다. 언짢은 일을 겪고 사유의 방에 갔는데 ‘두 분’을 뵙고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는 글도 읽었다. 관람객들은 반가사유상에 이렇게 인격을 부여한다. 큰 수술을 마친 아내와 함께 보고 왔다는 관람객은 “아내가 좋아해 오래 머물렀다. 인생은 유한하지만 사람도 하나하나가 보물”이라고 썼다.

한국은 경제적 풍요를 이뤘지만 정신적으로는 건강하지 않다. 굶주려서 자살하는 사람은 없다. 세상은 사람을 연봉과 직업, 즉 ‘명함’으로 평가하고 다수를 루저(패배자)로 만든다. 그런데 사유의 방은 행복의 실마리를 건넨다. 반가사유상이 머금은 천년의 미소는 “오늘 당신이 겪는 시련은 아무것도 아니다. 괜찮다”고 위로하는 것 같다. 관람객과 공명을 일으키고 삶에 쓸모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명작이다.

보고 또 봐도 물리지 않는다. 불멍, 물멍보다 나은 게 ‘반가사유상멍’이라는 말도 들린다. 사유의 방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인기가 많아 늘 붐빈다는 점이다. 국민 100명 중 99명은 아직 두 반가사유상을 만나지 못했다. 요령을 전한다면 평일 오전이나 야간 개장(수요일과 토요일)을 이용하는 게 좋다. 몇 번 경험해 보니 수요일 밤이 한산하다. 운이 좋을 경우 그 국보들을 독대하며 천천히 음미할 수도 있다.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수요일 밤의 사치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관 2층에 있는 사유의 방 /박돈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