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에게 동그라미가 없었다면 과연 어땠을까. 우영우는 얼마 전 끝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주인공이다. 동그라미는 그의 친구다. 이 드라마 시청률은 1회 0.9%로 출발했는데 갈수록 화제를 일으켜 마지막 회는 17.6%를 기록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변호사 우영우가 대형 법무 법인에 들어가 겪는 아기자기한 사건과 일상을 다뤘다. 현실에선 일어나기 어려운 설정이지만 드라마라면 한번쯤 상상해볼 수 있겠다.

우영우 포스터

자폐가 있으면 자신을 둘러싼 복잡한 사회적 맥락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한다. 왜 친구가 없는지 왜 따돌림 당하는지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극 중 학창 시절 우영우가 그랬다. 동그라미는 그런 우영우에게 울타리였다. 우영우가 사회 속으로 스며들 수 있게 ‘징검다리(bridge)’를 놓고 설움을 당하면 ‘에어백(airbag)’이 돼줬다.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게 완전한 자유를 주는” 친구였던 셈이다.

친구가 건강과 행복의 원천이란 점은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는 바다. 좋은 친구가 있으면 오래 살고 병도 덜 걸린다. 가족이나 배우자보다 더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좋은 친구 관계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달 학술지 네이처에는 라즈 체티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가 페이스북 도움을 받아 벌인 공동 연구가 실렸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과 경제적 계층이동성(Economic Mobility)을 다루는데 결론은 가난한 아이에게 좋은 친구(부유한 친구)가 많으면 나중에 가난을 벗어날 가능성이 커진다는 내용이다. 25~44세 페이스북 이용자 7220만명을 조사했다. 그 나이 때 성인의 80%에 해당하는 규모다.

라즈 체티 하버드대 교수 공동 연구가 실린 네이처 8월호 표지

그런데 어떻게 사귀지? 미국이건 한국이건 유유상종(類類相從)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전에는 한 동네에 각양각색 계층이 섞여 살곤 했지만 이젠 빈부 격차가 주거 지역을 나눈다. 빈곤층이나 취약 계층 아이들은 ‘좋은 친구’를 만날 기회가 사라져가고 있다. 연구진은 2001년 문을 연 미 캘리포니아 한 공립 고교에 주목했다. 다양한 인종적·경제적 배경을 지닌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다. 이 학교 졸업생 보위는 저소득층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다. 고교 시절 친구를 통해 새로운 길을 알게 되고 노력 끝에 변호사가 됐다. 진부한 듯한 성공담이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보통 공립학교에선 배경이 천차만별이면 파벌이 나타나고 끼리끼리 어울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고교는 이런 맹점을 없애기 위해 교육 환경을 다시 설계했다. 교정 중앙 도서관과 야외 무대, 안뜰 주변으로 산책로를 만들어 지나가다 서로 자주 얼굴을 보게 하고, 학급에선 이틀에 한 번 2시간씩 학생들을 모아 교류하게 했다. 방과 후 취미 활동이나 운동·예술 동아리도 적극 독려하고 지원했다. 전교생이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취지다. 이런 걸 ‘사회적 디자인(Social Design)’이라 부른다. 이런 환경 속에서 저소득층 자녀들도 좋은 친구를 만나 자극을 받으며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었다. 변호사가 된 보위가 그랬다.

친구와 우정에 대해 연구하는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 옥스퍼스대 교수는 ‘우정의 일곱 기둥’이란 표현으로 어떻게 친구가 되는지 설명한다. 같은 언어(사투리)를 쓰거나, 같은 지역에 사는 경우, 또는 같은 학교나 같은 직장, 나아가 같은 취미와 관심사, 세계관(종교·도덕·정치 견해 등)을 공유하는 순간, 신비로운 친밀감이 솟는다. 유머 감각도 마찬가지다. 음악 취향도 빠질 수 없다. (”너 아미니? 나도 아미야?”) 거칠게 요약하자면 만나서 계기를 찾으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좋은 친구를 만나길 기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사람들을 섞어 놓은 것만으로는 기회 균등 효과가 크지 않다. 섞여 있는 사람들 간 관계가 중요하다. 소셜 믹스(Social Mix)에 대해 연구해온 서구 학자들은 이런 계층간 교류가 활발해지려면 ‘브로커(broker)’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레 어울릴 수 있도록 이어주는 환경을 설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쩌면 그게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는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라즈 체티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