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원전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 이전까지만 해도 원전은 보수·진보 정권 구분 없이 추진돼 왔다. 정권별로 건설 허가가 난 원전은 김대중 정부 2기, 노무현 정부 4기, 이명박 정부 4기, 박근혜 정부 2기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11월 국가에너지위원회에서 원전의 해외 진출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을 진두지휘해 성사시켰다. UAE 원전에 들어가는 최고 핵심 설비인 APR1400 원자로는 한국이 독자 개발한 3세대 원전으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와 유럽사업자요건 인증을 모두 받은 유일한 노형(爐型)인데, 개발이 1992년 노태우 정부 시절 시작돼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끝났다. 진보 정부의 경우 처음부터 원전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에너지 문제의 현실을 파악하고 난 후에는 원전을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원자력 기술은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미래 성장동력”이라고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19일 부산 기장군 고리 원전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고리 1호기 영구 정지는 탈핵(脫核) 국가로 가는 출발”이라며 탈원전 정책을 선언하고 있다./연합뉴스

현 정부는 원전을 새로 짓지 않고 수명 연장도 하지 않기로 했다. 과거 정부의 원전 정책을 계승하지 않는다면 원전보다 나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안전 문제를 이유로 원전 정비 기간을 이전 정부 대비 몇 배씩 늘려 이용률을 떨어뜨리다가도 폭염처럼 전력 수요가 치솟을 때면 이용률을 높이곤 했다. 탄소 감축을 위해 석탄발전소 가동을 잇달아 멈춘 상황에서 전력난이 닥쳤을 때 의지할 대상은 원전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정부 임기가 끝난 이후다. 탈원전 일정표에 따라 내년부터 줄줄이 원전 가동이 중단된다. 현재 가동 중인 24기 원전 가운데 10기가 2030년까지 멈춘다. 탄소중립 시나리오대로라면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9%에서 2050년 6~7%로 떨어진다. 지금은 급하면 돌릴 원전이 있다. 하지만 원전이 없는 상태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지정학적 불안 요소로 LNG(액화천연가스) 수급에 차질이 생기거나 재생에너지가 기상 악화 때문에 전기를 생산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입만 열면 탈원전을 외치던 이 정부는 정작 원전 덕분에 전력대란을 겪지 않았다. 그랬던 정부가 원전을 없앤다고 하면서 그 부담은 이후 정부가 떠안을 처지다.

원전 폐쇄가 본격화하기 전인데도 국민들이 부담할 탈원전 비용은 불어나고 있다. 현 정부 5년간 원전 이용률(71.5%)이 이전 정부 때보다 10%포인트 떨어진 것만으로 한전의 부채를 10조2000억원 늘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싸고 안정적인 원전을 통한 전력 공급이 줄면 결과는 뻔하다. 발전 단가가 원전보다 2배 비싼 LNG와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력 공급 원가가 올라가 전기요금 인상 압박이 커진다.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진하는 교수협의회는 정부 계획에 따라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30%로 올리면 전기요금이 39~44%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2050년 재생에너지 비중이 전체 전력 수요의 61~71%가 될 경우 전기요금이 얼마 더 오를지는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결국 청구서를 받는 것은 탈원전 정책을 결정한 사람들이 아니라 국민이다.

원전은 계획 수립부터 건설 기간을 감안해 최소 10년 이상 앞을 내다보고 추진한다. 지금 당장 쓰려는 게 아니라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전문가들은 “탈원전 광풍이 불었던 지난 5년간은 우리 에너지 시스템에 ‘잃어버린 5년’ 이상의 후유증을 남길 것”이라고 우려한다. 에너지 분야에서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정부가 이를 키우기는커녕 큰 빚만 남겼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