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논란에 몇 해 전 들었던 오일 메이저 회사 셸(Shell) 얘기가 떠올랐다. 셸 한국법인은 월요일 첫 회의를 안전 관련 토론으로 시작한다. 셸이 한국 조선소에 주문한 선박 제조 현장은 물론 회사 안팎에서 겪은 소소한 안전 에피소드를 공유한다.

일상에서도 안전이 최우선이다. 외부 사람과 회의할 땐 가장 먼저 재해 발생 때 행동 요령, 대피 경로 등 안전 교육부터 한다. 모든 직원은 계단을 내려갈 때 반드시 손잡이를 잡아야 한다. 대표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키지 않으면 하급자가 그 자리에서 지적한다. 택시 이용법도 독특하다. 안전벨트를 맨 뒤 출발이 원칙이다. 우리나라 택시 기사들 맘이 급해 손님이 벨트를 매기 전에 출발하다 보니 셸 직원들은 택시 문을 열어둔 채 안전벨트부터 매고 차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인데 이유는 간단했다. 산재 예방이 생산성을 높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매일 전 세계에서 7500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한다. 전체 사망자의 5~7% 정도다. 이 중 6500명은 질병, 1000명은 직장 내 사고가 원인이다. 근로시간 손실, 근로자 보상, 생산 차질, 의료 비용 등 산재의 경제 손실은 세계 GDP의 4% 정도다. 작년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 GDP의 배가 넘는 3조7600억달러(4500조원)다. 우리나라의 산재 경제적 손실은 2015년 20조원에서 2020년 29조9841억원으로 50% 급증했다. 산재 노동자의 치료와 요양 등으로 노동을 못 한 날을 합한 근로 손실 일수는 2020년 5534만일로 1.5% 증가했다.

지난달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안전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유례없이 강한 처벌법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계기가 된 2018년 김용균씨 사망 사고부터 최근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 채석장 매몰 사고까지 끊이지 않는 산업재해를 막겠다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형사처벌만 강화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관행을 그대로 둔 채 처벌만 강화한다고 산재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사고는 사고대로 계속되고, 처벌만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질 뿐이다. 지금처럼 처벌 기준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이면 아무나 처벌할 수 있게 되고, 결국 아무도 지키지 않는 법이 된다.

기업 인식도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 근로자 10만명당 치명적 산업재해 수는 OECD 국가 중 최상위다. 재해율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당장 이익에만 파묻혀 안전을 무시해 온 결과다. 셸의 사례에서처럼 선진국에선 이미 작업장 안전 개선, 근로자 건강에 대한 지출은 추가 비용이 아니라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에 필수 조건으로 생각한다. 안전을 위한 투자가 기업의 효율성,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국가 경쟁력까지 높인다는 연구 결과는 수없이 많다.

우리나라 산재 발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경영인이 감옥 갈 위험이 있어도 안전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하지만 소규모 기업의 경우도 작은 투자가 산재 예방에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국제사회보장협회(ISSA)에 따르면 기업이 직원 한 명에게 안전을 위해 연간 1달러를 투자하면 2.2달러의 잠재적 경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2020년 국내에서 882명이 직장에서 사고로 숨졌다. 기업들은 중대재해법 처벌 1호를 피했다고 안도할 일이 아니다. 투자 없이는 안전이 없고, 안전 없이는 지속 성장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