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31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막하는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한다. 이달 초 정부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기존 2018년 대비 26.3%에서 40%로 대폭 올렸는데, 그 배경에 COP26 기조연설이 있다고 보는 기업인들이 많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탄소 감축 목표치를 대폭 상향하라고 지시하면서 “이 정도 수준으로는 국제사회에 제출하기 어렵지 않겠냐”고 했다고 하는데, 기조연설을 하는 마당에 26.3%로는 체면이 안 선다는 뜻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그 이유 외에는 40%라는 숫자를 도출해 내는 데 어떤 합리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노들섬다목적홀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뉴시스

현재 탄소 중립을 둘러싼 논의의 초점은 비용과 실현 가능성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국가와 기업, 자본 간의 경제·산업의 헤게모니 싸움이라는 이면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유럽·미국이 탄소 중립에 적극적인 데는 ‘지구를 살리자’ 같은 인류애적 이유만 있는 게 아니다. 석유로 대표되는 탄소 에너지 시대에 아시아에 빼앗긴 제조 산업의 패권을 되찾아 오겠다는 저의가 깔려 있다. 현재의 산업 구조에선 비용·기술적 측면에서 유럽과 미국이 한국·중국·일본에 이미 추월당했다. 그래서 산업의 기반이 되는 에너지의 판도를 뒤엎어, 제조업 경쟁의 게임 룰(rule)을 새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태양광·풍력·수력 같은 재생에너지의 역사가 긴 서구는 기술적·지리환경적 여건에서 아시아 국가에 비교 우위에 있다. 서구 선진국 정부는 탄소세(稅) 같은 규제로 이를 지원하고, 기업과 자본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로 상대를 압박하고 있다. ESG 투자의 선봉장 격인 미국의 세계 최대 사모펀드 블랙스톤이 최근 대대적으로 아시아 기업 사냥에 나선 것은 예사롭지 않다. 석유 시대 이후, 탄소 중립이라는 새로운 ‘에너지 세계대전’의 시작과 함께 총력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 체결 후 탐색전을 벌이던 국가와 기업들이 코로나를 계기로 본격적인 전투에 들어갔다. 초반 중국은 심각한 전력 부족 사태를 겪으며 3분기 경제성장률이 5% 아래로 떨어지는 막대한 피해를 봤다. 유럽도 가스값 폭등이라는 적잖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 전쟁을 치르기 위해선 탄소 배출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값싸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전기차·데이터센터·스마트공장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최종 에너지를 전기의 형태로 소비하는 전기화(化)이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확실한 전략 무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얕잡아 보이지 않는다. 운이 좋게도 우리에겐 축적된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이 있다. 우리는 석유 시대에 비산유국의 설움을 겪었다. 일조량이 적고 바람의 세기가 일정하지 않은 우리는 태양광·풍력에서도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이다. 그런데도 원전을 줄이고, 전 국토에 태양광 패널과 풍력 발전기를 세우겠다는 것은 석유 시대로 치자면 한반도 주변 대륙붕을 모두 파내서라도 유전을 찾아 산유국이 되겠다고 하는 것만큼 무모하다.

문 대통령은 COP26에서 탄소 배출 40% 감축 계획을 발표하며 한국이 탄소 중립에서도 세계의 모범 국가가 될 것이라고 선언할 듯하다. 세계 각국이 앞에선 그런 문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내겠지만, 속마음은 다를 것이다. 원전을 포기한 채, 그 목표를 달성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너지 세계대전에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고 들어오는 한국을 보며 비웃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