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북한 김정은이 공식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미국 대선 경선에서 한 후보가 김정은을 ‘김정3세’라고 부른 해프닝이 있었다. 신문에서 본 ‘김정일(Kim Jong Il)’의 ‘Il’(대문자 I+소문자 L)이 로마숫자 ‘2(Ⅱ)’인 줄 알고 ‘김정 2세’로 잘못 읽었고, ‘그 아들이 3대 세습을 했다’ 하니 머릿속에서 ‘김정 3세’라는 그럴듯한 작명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북한 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심 수준이 얼마나 낮은지에 관한 칼럼을 썼다. 그 후 몇 년 동안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인들은 김정은을 ‘데니스 로드먼과 친한 철부지 독재자’ 정도로 인식했다. 국제정치의 ‘의미 있는 플레이어’가 아닌 ‘흥미거리’에 가까웠다.
올해 말이면 김정은이 집권한 지 꼭 10년이 된다. 그 10년 동안의 변화는 극적이다. 철저하게 은둔하던 김정은은 2018년을 기점으로 국제 무대를 누비며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트럼프쇼’ 덕분에 미 대선 후보도 헷갈려하던 북 지도자 이름이 이제는 국제정치에 별 관심 없는 필부들 입에서 줄줄 나온다. 문재인·박근혜·이명박은 몰라도 김정은은 안다.
어린 시절을 스위스에서 보낸 ‘젊은 최고존엄’이 북한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 것이라는 기대는 반짝했다 완전히 사라졌다. 파격 행보를 몇 차례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또래 젊은 세대를 체제의 최대 위협 요소로 보고 사상뿐 아니라 옷차림·말투까지 통제하고 있다. 140kg까지 늘었다가 다시 수십kg이 줄었다는 김정은 몸무게만큼 북의 변화 진폭은 컸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변하지 않은 한 가지는 북한의 핵을 향한 집착이다. 김정은은 한순간도 핵 개발 시나리오를 중단한 적이 없다. 수소탄을 포함한 핵탄두를 완성했고 이를 실어 나를 수 있는 다양한 미사일을 끊임없이 시험하고 있다. ICBM, SLBM 완성도 턱밑까지 와있다. 미 위성에 노출된 영변 외에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도 계속 돌리고 있다. 김정은이 트럼프와 회담 때 ‘영변 폐기’ 카드로 선수를 친 것은 따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핵 완성을 선언한 이후에는 핵 보유를 인정받기 위한 단계를 차곡차곡 밟아가고 있다.
하지만 직진 일변도의 북한과 달리 국제사회의 대응은 유턴의 연속이었다. 미국은 북핵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는 ‘전략적 인내’에서 ‘화염과 분노’로, ‘최대 압박’에서 ‘러브레터’로 냉온탕을 오갔다. 우리 정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정권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한미는 정책 일관성 차원에서 북한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 와중에 제재 시스템을 쌓아 올린 것은 가장 의미 있는 성과였다. 강력한 경제 제재로 핵 개발 대가를 지속적으로 치르게 해야 북 내부의 계산법이 흔들리고 실낱 같은 비핵화 돌파구가 열린다. 길고 어렵고 지루한 과정이지만 지금까지 효과를 입증한 유일한 방법이다.
트럼프·문재인 대통령이 합작한 ‘화끈한 한 방’ 시도는 ‘김정은 비핵화 의지’가 허구라는 사실만 재확인하고 막을 내렸다. 바이든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 시즌2′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것도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이런 미국에 대고 우리 정부는 ‘제재 완화 인센티브’를 내놓으라고 재촉하고, 대선 전 종전 선언 이벤트도 하자고 한다. 지금 상황에서 ‘김정은 집권 10년 축하 선물’ 이상 무슨 의미가 있나.
김정은은 핵을 완성하고 국제적 위상도 높인 꽤 만족스러운 10년을 보냈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눈앞의 선거만 보고 있는 동안, 김정은은 핵보유국에 올라서고 한미 동맹을 와해하려는 다음 10년의 플랜을 가동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