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 금성 대전투' 국내 포스터.

‘7·13대공세’ 혹은 ‘금성전투’는 6·25전쟁 말 최후·최악의 대전투였다. 1953년 7월, 중공군은 동부전선에서 유엔군이 북진해 얻은 유일한 돌출 지역이던 금성지구에 전례없는 공세를 전개했다. 임박한 휴전과 반공포로 석방 소용돌이 속에, 휴전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 시작한 총공세였다. 주 목표는 포병 전력이 약한 국군 수비 지역. 중공군은 최대한 많은 국군을 죽이려 했다. 그 결과 방어선이 4㎞ 이상 후퇴하며 국군 1만3000여 명, 중공군 약 7만명의 전사상·실종자를 냈다. 수천수만 국군 포로가 못 돌아왔고, 서울 면적의 약 3분의 1 크기 영토를 빼앗겼다.

그 금성전투를 다룬 중국 선전영화 ‘1953 금성 대전투’(중국 제목 ‘금강천’)의 국내 배급이 무산됐다. 수입사 대표는 “심려를 끼쳐드려 깊이 사과드린다”며 배급을 포기했다. 역사적 배경에 무지한 채 푼돈이라도 벌 요량이었다면 불쌍한 일이고, 만의 하나 ‘미제에 항거한 민족해방전쟁을 지원한 중국 형제들’ 이야기인 것을 알았다면 ‘반역’이다.

중국은 대놓고 문화산업을 프로파간다로 활용한다. 시작점은 2016년 11월 전인대 상무위 24차 회의에서 통과된 ‘중화인민공화국영화산업촉진법’으로 볼 수 있다. “영화는 인민대중의 사상·도덕 자질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과,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선양하는 중대 영화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규정했다. 전문가들은 이 법령을 “중국 정부의 영화산업 통제 강화, 공식화, 법제화”로 요약한다.

중국 역대 흥행 1위 영화 ‘전랑(戰狼)2′(2017), 7위 ‘홍해행동’(2018), 10위 ‘나와 나의 조국’(2019).

이후 꽉 막힌 체제 선전 주선율영화(主旋律電影)의 틀을 벗어나 흥행 파워까지 갖춘 영화가 잇따라 등장해 박스오피스 순위를 채웠다. ‘차이나 람보’의 분쟁 지역 무용담 ‘전랑(戰狼)2′(2017)가 여전히 역대 1위(56억8781만위안)이고, 지구를 구하는 데 중국인만 잔뜩 등장하는 ‘유랑지구’(2019·4위), 중국 특수부대의 아덴만 구출작전 ‘홍해행동’(2018·7위), 건국과 원자탄 개발 등을 다룬 ‘나와 나의 조국’(2019·10위) 등이 그렇다. 이런 식으로 중국 영화의 국가주의 경향이 강화되는 가운데 미·중 대결에서 극적 승리를 부각하려 만든 영화가 ‘금강천’이다. 곧 개봉할 ‘장진호’는 어떤 내용일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최근 중국은 연예인 국적이나 이전 행적을 따져 살생부를 만들고, 아이들 컴퓨터 게임 시간까지 통제한다. 중국 영화 전문가인 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임대근 교수는 “마오쩌둥 이후 중국 권력자는 권력 공고화를 위해 정풍(整風)운동을 일으켰다. 현 권력도 정치적 적수 제거로 시작해 2~3년 전부터 알리바바 마윈 등 경제계 정풍을 진행했고, 이제 문화 영역으로 넘어왔다”며 “요즘은 한국을 통해 들어오는 자본주의 문화가 문제라고 공공연히 선전한다”고 전했다.

게다가 중국 영화와 드라마는 중국 내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최근 ‘조선구마사’ 사태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이들의 집요한 역사 왜곡은 지긋지긋할 정도다. 또 중국 자본은 우리 영화·드라마 제작사, 매니지먼트사들을 돈으로 야금야금 집어 먹고 있다. 문화의 비교 우위는 한순간에 역전될 수도 있다. 그때도 지금처럼 ‘중국 영화는 유치해서 안 본다’고 여유 부릴 수 있을까.

영화 포스터에 '犯我中华者 虽远必诛!' <‘우리 중국을 범하는 자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반드시 죽인다>라고 표현한 중국영화 '전량2'. 이런 영화 카피가 우리나라에서는 '전세계를 구하라'라는 내용으로 포스터가 나왔다.

‘전랑2’의 중국판 포스터 카피는 ‘우리 중국을 범하는 자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반드시 죽인다[犯我中華者, 雖遠必誅]’였다.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아무리 상업적, 정치적으로 타락했다고 해도, 이런 무도한 광고 문구를 앞세워 역대 최고 흥행작이 되는 나라는 대명천지에 중국뿐이다. 중국의 문화굴기(屈起)는 보편적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교활하고 치밀하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때다.

영화 포스터에 '犯我中华者 虽远必诛!' <‘우리 중국을 범하는 자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반드시 죽인다>라고 표현한 중국영화 '전량2'의 중국 국내판 포스터(왼쪽)와 '전세계를 구하라'라는 카피가 쓰여진 국내판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