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도, 안철수도, 금태섭도 떠났다. 그래서 4·7 재보선에서 압승을 거둔 제1 야당 국민의힘은 작년 4·15 총선 참패 직후와 마찬가지로 앙상해보인다. 강력한 야당 없이 정권 교체를 기대할 수 없는 게 현실이지만, 선동열급 ‘구원투수’들이 한꺼번에 떠난 국민의힘이 자력(自力)으로 그 임무를 완수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선 우려의 시선이 많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그간 보수 정당이 스스로 매설해 자신들의 앞길을 차단했던 크고 작은 ‘자폭(自爆)성 지뢰’가 이들을 통해 상당 부분 제거됐다는 점이다.
정권의 폭정에 넌더리가 나도 ‘낯부끄러워’ 보수 야당에 표를 줄 수 없다던 많은 국민이 이번만큼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과감한 사죄 행보가 있었다. 작년 8월 광주 5·18 민주 묘지를 찾아 과거 보수 정당이 호남을 배척하면서 막말로 상처를 준 데 대해 참회한다며 무릎을 꿇었다. 호남 민심이 야당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4개월 후에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 사과했다. ‘적폐 야당’이라는 낙인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김 전 위원장은 30~40대 원내외 정치인들을 비대위원 등 당의 전면에 내세우고, 대기업이 반대하는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에 원론적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꼰대 정당’ ‘부자 정당’이라는 고정관념에도 맞섰다. 헌신적 지원 유세로 힘을 보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중도·실용과 소신 진보를 대표하며 국민의힘이 다양한 스펙트럼의 이념과 인물을 포용하는 정당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문제는 앞으로 할 일이다. 그간 조연에 불과했던 국민의힘 의원·당직자들이 ‘정권 교체를 위한 통합의 그릇이 돼달라’는 국민적 여망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주연으로 우뚝 서야 한다. 우선 영남과 장노년층 위주로 편중된 당원 구조를 바꿔야 한다. 취약했던 지역·연령대·직업군을 대상으로 한 적극적 당원 영입 운동이 시급하다. 단기적으로는 ‘당원 70%, 국민 여론조사 30%’로 규정된 전당대회 당 지도부 선출 규정부터 바꿔야 한다. 국민 참여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여 새로운 당 지도부가 보편적 국민들 선호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로 채워지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만 된다면 벌써부터 ‘중진 대 소장파’로 대립 구도가 형성된 당대표 경쟁은 긍정적 시너지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당의 기존 유력 인사들은 소소한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지지 말고 대승적 자세로 당론을 주도해야 한다. 여당이 위선과 내로남불로 천박한 민낯을 드러낼수록 야당은 내부적으로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세워나가야 한다. 선거 승리 당일 당직자 폭행으로 물의를 빚은 송언석 의원에 대한 단호한 조치는 그 기점이 될 수 있다.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지사 등 당 내부의 대선 주자들도 파격적 행보로 당의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안철수 대표 등 외부의 야권 대선 주자들에 비해 미미한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이들이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국민 앞에 내세울 대선 주자 하나 없는 제1 야당이라면 정권 교체의 그릇 역할을 맡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들의 정치적 책임은 크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국민의힘이 양극화된 이념 정치의 함정에 다시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허울뿐인 이념을 앞세워 비현실적 정책을 쏟아내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적으로 몰아세우는 이념 ‘과몰입’ 정치는 문재인 정권을 통해 또 한번 국민의 파산 선고를 받았다. 김 전 위원장은 올해 초 발간한 책 ‘김종인, 대화’에서 “보수주의는 먼저 바꾸는 사상이요, 인간과 사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근원으로 한다”고 했다. 사회의 주류가 되기 위한 상식적 보수의 자세가 이런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