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서해상에서 실종된 우리 공무원을 총격으로 살해하고 불태운 사건에 대한 정부·여당의 ‘유체이탈’식 대응은 ‘국민의 생명 보호’라는 국가의 근원적 존재 이유를 묻는 이들에게 좌절감만 안겨주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한 여권의 도착(倒錯)적 인식은 586 세대 정치인의 간판 격인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 입을 통해 명료하게 집약됐다. “그분이 떠내려가거나 혹은 월북했거나 거기서 피살된 일이 어떻게 정권의 책임인가.” 우 의원이 연세대 총학생회장이던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군사독재 정권의 시위 진압 과정에서 최루탄 파편에 맞아 숨진 고(故) 이한열 열사 영정을 들고 장례식 선두에 섰던 ‘역사적 사진’을 떠올리면, 이 발언은 한층 더 난감하게 다가온다.
6월 항쟁의 발화점은 정권에 의한 고 박종철 열사의 억울한 죽음과 이에 대한 뻔뻔한 거짓말이었다. 잔혹한 고문 끝에 숨진 고인에 대해 1987년 1월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기자회견에서 “탁 하고 책상을 치니, 억 하고 쓰러져 사망했다”고 했다. 누가 봐도 뻔한 거짓말에 ‘전두환 정권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일상적 분노가 응축됐다. 그해 6월 9일 이한열 열사마저 숨지면서 회사원·주부까지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에 동참하자 정권은 6·29 선언으로 백기를 들었다. 항쟁을 선두에서 이끌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1기 중심에 현재 통일부 장관을 맡고있는 의장 이인영과 부의장 우상호가 있었다.
군사독재의 폭압에 기본권 제한을 감수하면서도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이라며 참던 일반 국민들이 6월 항쟁에 대대적으로 동참했던 건, ‘정권이 내 목숨도 언제든 버리고, 거짓으로 은폐할 수 있겠다’는 자각(自覺)이 확산된 측면이 컸다. 그런데 30여년이 지나 ‘촛불 항쟁으로 탄생했다’는 문재인 정권에서 정부가 외면한 억울한 죽음과 이와 관련한 거짓말 논란이 발생했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표류하던 공무원이 생존 상태에서 북한군에 발견된 사실을 파악하고도 6시간 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피살을 방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의 공무원 사망 첩보 입수 43시간이 지나서야 대변인을 통해 첫 입장을 밝혔다. “아빠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할 때 이 나라는 뭘 하고 있었느냐”는 공무원 아들의 편지에는 “나도 마음이 아프다”고만 했다. 정부는 뚜렷한 증거도 없이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발표했다. 공무원과 한배에 탔던 선원들은 일제히 “월북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진술했지만 해경은 이를 철저히 은폐했다. 자진 월북의 근거라던 해경의 조류 흐름 실험도 사실은 전부 실패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군은 당초 “북한군이 시신을 불태웠다”고 했다가 북한이 부인하자 “확인되지 않았다”며 말을 바꿨다.
앞뒤 안 맞는 이런 황당한 대응에 현 정권의 주력인 586 세대 정치인들은 궤변과 침묵으로 동조하고 있다. 민주당 신동근 의원은 “월북은 반국가 중대 범죄로 계속 감행할 경우는 사살하기도 한다”며 고인과 유족을 또 한 번 짓밟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 멤버인 이인영 장관은 아예 비이성적 정부 대응의 한 축을 맡고있다. ‘국민의 생명 보호’는 정권 존립을 위한 최소한의 근거이자 명분이다.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이를 허물어뜨리면서 자신들 이익을 챙기려 나서는 정권은 어떻게든 심판을 받고야 만다. 몰락한 과거 군사독재 정권은 그런 극단적인 사례였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하지만 정권이 지켜야 할 국민 목숨의 무게는 언제 어디서나 같아야 한다는 점은 더욱 명백해진 세상이다. 영원히 국민을 속일 수는 없다. 문재인 정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586 정치인들이 33년 전 기억을 더듬어 양심과 상식의 소리를 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