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이사회 의장은 재산이 73억달러(약 8조5000억원·미국 포브스 집계)에 달한다. 1966년생인 김 의장의 부(富)는 카카오 주가가 올해에만 2배 이상 급등한 덕분에 내로라하는 전통 재벌 2~3세들을 차례로 앞질렀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은 물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66억달러)까지 넘어섰다. 22년 전 한양대 앞에서 미션넘버원이란 PC방을 차렸던 30대 청년이 ‘재벌(chaebol) 2세'보다 더 큰 부자가 된 것이다.
최근 점심 자리에서 만난 한 IT 기업 고위 임원은 “우리나라 혁신을 이끌 재목인 그를 두고 주변에서 재벌놀이 운운하는 말이 나와 걱정”이라고 전했다. ‘김 의장 자택에 차 20대를 댈 수 있는 주차장이 있다더라’는 식으로, 성공한 창업가에게 으레 붙을 법한 헛소문을 가리키는 게 아니었다. 그의 일부 투자가 자칫 ‘재벌 행태’로 비칠까 우려한 것이다.
최근 상장한 시가총액 4조원대 카카오게임즈 주주 명단에는 케이큐브홀딩스란 회사가 있다. 김 의장이 지분 100%를 보유했고 친동생과 아내가 각각 대표이사와 등기임원인 가족 회사다. 그런데 이 회사가 카카오게임즈 주식 74만주(400억원 규모)를 보유하는 과정이 세간에서 구설에 올랐다. 케이큐브홀딩스는 2014년 말 마음골프라는 회사에 35억원을 투자했다. 그런데 이 회사는 2~3년 만에 자본잠식에 빠졌다. 마침 그 시점에 카카오게임즈가 이 회사를 인수했고, 케이큐브홀딩스는 자본잠식이었던 마음골프 주식을 카카오게임즈 주식으로 바꿨다. 이번 카카오게임즈 상장으로 케이큐브홀딩스는 수백억원대 시세 차익을 실현할 수 있었다.
주변에선 그의 투자가 ‘돈’보다는 ‘의리’를 따진 내용이라고 전한다. 김 의장과 마음골프 창업자 문모씨는 1998년 삼성SDS를 나와 창업 초기에 같이 날밤을 새운 동료다. 그런 문모씨가 창업한 스타트업에 김 의장이 흔쾌히 개인 돈을 투자해 도운 것이란 설명이다.
문제는 아무리 그렇더라도 결과만 놓고 보면 ‘본인이 투자한 회사가 도산 직전에 몰렸는데, 가장 유망한 계열사가 이 회사를 인수했고 수백억원 이득을 취했다’는 대목이다. 편법도, 불법도 아니지만, ‘재벌법(法)’이 지배하는 우리나라 정서에는 안 맞는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본인 돈으로 지인 회사에 투자한 뒤 삼성 계열사가 그 회사와 합병이라도 했다면 어떨까. 카카오는 이미 재계 순위 23위(공정위의 자산 기준)고 김 의장은 총수(동일인)다. 계열사 수만 보면 카카오그룹은 101곳으로, 삼성그룹보다 많고 재계에서도 SK그룹에 이어 둘째다.
김 의장은 분명 여느 재벌과 다르다. 한 푼도 상속받지 않고 스스로 업(業)을 만들었다. 시골서 농사를 짓다가 무작정 상경한 중졸 아버지를 둔 5남매의 장남(長男). 아버지는 막노동과 목공 일로, 어머니는 지방에서 호텔 서빙 등을 전전하면서 집안을 이끌었다. “할머니까지 포함해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 살았다”던 그는 서른두 살 때 500만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끼고 처남이 사는 오피스텔에서 창업했다. 실패도 숱하게 했고 지금의 자리를 스스로 일궜다.
반(反)기업 정서에 한국 경제계가 통째로 매도당해도, 그는 당당하게 “창업을 했다면 진짜 목숨 걸고 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김범수 자서전)고 말할 자격이 있다. 너무 빠른 테크놀로지 혁신의 속도에 한국 사회가 현기증 날 때마다 다들 그의 혜안을 기대할 것이다. 수년 전 카카오라는 벤처 기업을 막 시작한 김 의장을 만났을 때 그가 “배는 항구에 정박했을 때가 안전하다. 근데 그게 배의 존재 이유인가요”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그의 말마따나 김 의장이 언제나 대양(大洋)에서 조타수를 잡은 선장이길 바란다. 그게 ‘김범수’라는 창업가가 걸어가야 할 재벌과 다른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