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현 검사는 ‘파산지청’이라는 이름으로 검사 1인당 미제 500건을 돌파한 현실을 폭로했다. 그는 그동안 검찰의 수사 개시 권한은 내려놓더라도 ‘보완수사권’만큼은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빈틈이 있으면 보완수사로 메우고 기소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단순 스토킹으로 덮일 뻔한 사건을 20년간 이어진 계부의 성 착취로 바로잡고, AI로 증거를 위조해 판사를 속인 사기범을 구속하고, 단순 변사로 묻힐 뻔한 ‘계곡 살인’을 잡아낸 것은 모두 보완수사 덕이었다.
그러던 안 검사가 최근 국회를 향해 “보완수사권도 없애달라”고 나섰다. 우선 물리적 한계 때문이다. 천안지청은 정원 30명의 평검사 중 각종 특검과 파견 등으로 인력이 빠져나가 12명만 남았고, 최근 2명이 더 사직했다. 경력 15년의 안 검사조차 “어떤 사건이 있는지 파악조차 할 수 없어 두려움에 눈물이 난다”고 할 정도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보완수사권을 둘러싼 논의가 모욕감을 주기 때문이다. 여권에서 검찰의 수사 권한을 통째로 없애려는 가운데 보완수사권 유지를 조건으로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 등을 거래하려 했다는 흉흉한 의혹이 제기됐다. 안 검사는 “진위를 떠나, 보완수사권이 본연의 업무를 저버리는 거래 대상으로 전락할 바에는 없는 게 낫다”고 했다.
안 검사만의 생각이 아니다. 공봉숙 서울고검 검사는 내부망에 “보완수사권을 남겨줄 듯 말 듯하면서 그 대신 뭐라도(예를 들면 공소 취소) 얻어 가려는 이들이 여론과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며 “검사로서 못할 짓을 할 바에는 그냥 포기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장진영 순천지청 부장검사 역시 “보완수사권은 검사에게 권한이 아니라 ‘책임’만 될 뿐”이라며 “입법부의 무한 신뢰를 받고 있는 경찰에 모든 수사 권한을 넘기라”고 했다.
과거 검찰의 과도한 직접 수사가 낳은 폐해는 고쳐져야 한다. 그러나 보완수사는 억울한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직업적 양심, 책임감 하나로 보완수사권 유지를 외쳤던 검사들은 자신들의 양심이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되는 굴욕적 상황에서 “차라리 보완수사권을 안 갖겠다”고 나선 것이다. “공무원이 시키는 것만 하면 되지, 직업적 양심, 책임감은 개뿔”이라는 공봉숙 검사의 냉소가 지금 검찰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제도 공백의 피해는 누가 볼까. ‘계부 성폭행 사건’으로 우수 검사로 선정됐지만 결국 검찰을 떠난 류미래 전 검사의 말이 그 답을 대신한다.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에게 검사가 할 수 있는 것은 ‘경찰에 전달하겠다’는 말 외에 아무것도 없다”
검사들의 직업적 양심을 알아주지는 못해도 정치적 흥정에 이용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 마음마저 떠난 자리는 국민의 고통과 눈물만 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