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국회 해킹 사고 청문회장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증인으로 출석한 당시 김영섭 KT 대표를 보좌하기 위해 직원 10여 명이 동행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청문회장 앞에서 출입문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청문회 출석 증인은 후문을 통해 들어가게 돼 있는데 김 대표가 후문을 지나쳐 정문으로 걸어갈 때까지 KT 직원 누구도 그에게 출입문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정부 측 관계자가 김 대표에게 다가가 바른길을 안내하고 나서야 김 대표는 후문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길을 못 찾아 헤매는 일은 다른 대기업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보좌진이 사전에 동선을 파악한 후 최단 거리로 안내하는 건 업무의 기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KT에서는 기본을 망각한 일들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KT는 2024년 3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자격 없는 사외이사(조승아 서울대 경영대 교수)가 이사회 멤버로 활동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현행 상법은 기업의 최대 주주가 법인인 경우 해당 법인의 이사·감사·집행위원은 사외이사 자격을 상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 이사는 2024년 3월 KT 최대 주주 현대차그룹(현대제철) 사외이사로 취임해 KT 사외이사 자격을 상실했는데도 KT는 이를 2년 가까이 파악하지 못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사 자격 득실 여부는 이사회 사무국 업무의 기본 중 기본”이라며 “KT가 얼마나 설렁설렁 일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KT는 지난해 발생한 해킹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엉성한 일 처리로 지탄받았다. KT는 기자회견에서 해킹을 부인했다가 8시간 만에 당국에 해킹을 신고했다. 기자회견 3일 전 이미 서버 해킹 사실을 인지한 상태였다. 거짓말 논란이 일자 KT 임원은 “내부 소통 문제”라는 황당한 해명을 내놨다. 기본적인 부서 간 정보 공유가 안 됐다는 것이다.
KT가 지난 2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해킹 보상 프로그램을 놓고는 미성년자 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KT가 제공하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무료 이용권을 OTT 연령 제한 규정 때문에 미성년자들이 이용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용자들은 “미성년자 차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보지 않고 프로그램을 만들었느냐”며 비판한다.
KT는 지난달 말 주주총회를 열고 박윤영 신임 대표를 선임했다. KT에서만 30여 년 일한 박 대표 선임에 직원 대부분 환영하는 모습이다. KT에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사장이 내려오는 일이 반복됐는데 이 악순환이 끊겼기 때문이다. 정통 KT맨인 그는 KT의 단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박 대표에게 주어진 과제 중 하나는 느슨한 업무 문화부터 바로잡는 일이다. 이 일을 해내지 못한다면 ‘누가 사장이 돼도 똑같다’는 평가를 받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