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일 국회에서 2026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이 10일 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전쟁 추경’이라고 이름 붙인 예산이다. 중동 전쟁에 따른 고유가·고환율로 취약 계층과 기업들이 큰 어려움에 처했다는 것이 정부가 꼽은 추경의 배경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는 전쟁 발발 전부터 추경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1월에만 ‘추경’을 6회 언급했다. 반도체 호황으로 수출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주요 기관들이 올해 성장률 전망을 일제히 올리던 시점이었다. 위기도 아닌데 나랏돈을 푼다는 데 대한 여론은 좋지 않았다. 6·3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 표를 노린 ‘선심성 추경’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2월 28일 전쟁이 터졌고, 추경의 좋은 핑계가 됐다.

추경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대형 위기가 터졌을 땐 당연히 긴급 처방을 해야 한다. 2020년 코로나 사태가 대표적이다. 국가재정법은 추경 편성 요건을 명시하고 있다. ①전쟁이나 대규모 재해가 발생한 경우, ②경기침체·대량실업·남북관계 변화·경제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③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해야 하는 지출이 발생하거나 증가하는 경우에만 추경을 할 수 있다. 국가 전체에 상당한 충격이 가해졌을 때만 제한적으로 꺼낼 수 있는 ‘비상 카드’인 셈이다.

하지만 추경 편성사(史)를 보면, 추경이 정례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는 이번을 포함해 2000년대 들어 28회나 추경을 했다. 지난 27년간 연평균 1회 이상 국가적 위기가 발생했다는 얘기다. 2000년 이후 추경액은 총 391조4000억원에 달한다. 이쯤 되면 ‘추경 중독’이라 할 만하다.

추경 중독은 재정 건전성을 빠르게 갉아먹는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중앙·지방 정부·비영리 공공기관 부채) 비율은 금융 위기 때인 2008년 28.2%에서 지난해 53.4%로 17년 만에 1.9배가 됐다. IMF는 한국을 비롯해 11국을 선진국이면서 비(非)기축통화국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한국을 뺀 나머지 나라들의 평균 부채 비율은 같은 기간 1.2배(44.2→54%) 증가에 그쳤다. 유사시 자국 돈을 찍어 나랏빚을 갚을 수 있는 미국·일본·유로존 국가와 달리 비기축통화국은 부채 비율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중독자는 끊어야 할 때를 스스로 알지 못한다. 해마다 팽창하는 본예산 위에 추경까지 반복할수록 나랏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진짜 위기가 닥쳤을 때 정부가 쓸 수 있는 여력은 그만큼 줄어든다.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국가신용등급이 추락해 채권단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 그리스와 아르헨티나도 그 길을 걸을 땐 ‘아직 괜찮다’며 문제를 외면했다. 지나고 보면 결코 괜찮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