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2월 임시국회 8차 본회의에서 전날 상정된 형법 개정안 수정안(법왜곡죄)이 여당 주도로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80년 사법 체계를 뒤흔드는 이른바 ‘사법 3법’이 시행됐지만 법원은 조용하다. 내부 게시판에 올라온 글도 거의 없다. 한 판사는 그 이유를 이렇게 답했다. “접촉 사고라면 내려서 싸우기라도 할 텐데, 지금은 뺑소니 차량에 치여 의식불명이 된 상태다.”

가장 타격이 큰 것은 ‘법 왜곡죄’다. ‘이익을 주거나 권익을 해할 목적’으로 법을 적용하거나, 증거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유죄를 인정하면 법정형이 최대 징역 10년이다. 수사권을 가진 경찰이 판사의 판결을 해부하고, 판사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관심법(觀心法)’ 수사가 시작될 판이다.

당장 법정 풍경부터 달라지고 있다. 최근 열린 법원장 회의에서는 피고인이 재판장을 향해 “법 왜곡죄로 고소하겠다. 재판 똑바로 하라!”고 대놓고 협박한 사례가 소개됐다.

법원행정처는 16일 재판작용이 위축되지 않도록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제도를 정비하고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판사들의 심리적 위축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과거엔 말도 안 되는 고소·고발은 조사 없이 각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판사가 피의자로 입건된 4812건(2022년 기준) 중 정식 재판에 넘겨진 사례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법 왜곡죄’ 신설 후엔 수사기관도 정치적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최소한 한 번 나와서 조사는 받으라”고 하면 판사에게는 치명적인 압박이다.

결국 판사들이 선택할 생존 전략은 “책 잡히지 않는 재판”이다. 한 법원장은 “사건을 파악하려고 적극적으로 묻고 자료를 요구하기보다는 당사자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게 될 것”이라고 했다. 판결문도 시비 걸리지 않게 간략하게 쓸 가능성이 높다. 논란이 될 만한 사건은 ‘폭탄 돌리기’처럼 다음 재판부로 넘길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과거 ‘울산 선거개입’ 사건처럼 준비기일만 1년 넘게 끄는 재판 지연이 일상이 될 수 있다. 한 부장판사는 “판결을 하면 법 왜곡죄로 처벌받을 수 있지만 판결을 안 하는 것은 처벌 대상이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법 왜곡죄는 소수의 정치적 사건에서만 문제되는 게 아니다. 보이스피싱범, 전세사기범, 성폭행범도 무기로 쓸 수 있다. 오히려 작년 접수된 형사사건 181만 건의 상당수는 이런 사건들이다. 그들이 판사를 법 왜곡죄로 고소해 유죄 판결을 막는다면 그 피해는 누가 볼까. 판사들이 “진짜 피해자는 판사가 아닌 국민”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대한민국에서 판사는 헌법상 두터운 신분 보장을 받는다. 외압에 흔들리지 말고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법 왜곡죄로 판사들이 실존적 위협을 느끼면서 ‘비겁한’ 생존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재판은 미뤄지고 피해구제도 힘들어진다. 이것이 “부정하고 무도한 공권력의 법치주의 훼손을 엄단한다”며 집권 여당이 도입한 법 왜곡죄의 불안한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