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 노동조합과 국가공무원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최응천 전 국가유산청장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유산청은 요즘 초상집 분위기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국가유산 사적(私的) 유용’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다. 국가유산청은 내부 감사 뒤 지난달 김 여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실무 책임자인 궁능유적본부장은 직위 해제하고 중징계를 요청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꼬리 자르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당시 최고 결정권자이던 최응천 전 청장은 빼고 실무자에게만 책임을 전가한다는 것이다. 국가유산청 노동조합이 전임 청장을 형사 고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감사 결과는 참담했다. 김 여사는 2024년 9월 세계유산인 종묘에서 차담회를 열었고,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영녕전의 신실까지 둘러봤다. 유명 화가 마크 로스코의 유족을 만나는 자리였다. 김 여사가 과거 코바나컨텐츠 대표 시절 전시를 연 화가다. 사적인 인연과 이해관계가 얽힌 만남을 위해 종묘가 동원됐고, 절대 허용해선 안 되는 신실 문까지 열렸다.

종묘뿐인가. 김 여사는 궁궐도 제 집 드나들듯 했다. 출입이 제한되는 경복궁 근정전에 들어가 어좌(御座)에 앉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를 시찰하고, 광화문 월대와 현판 복원 기념 행사를 사전 점검하기도 했다. 지휘·감독 권한이 없는 대통령 부인으로서 모두 부적절한 행위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국가유산의 관리 원칙이 무너졌다는 점이다. 국가유산청이 궁능유적본부장에 대해 중징계를 요구한 사유는 ‘청탁금지법 위반’과 ‘사적 유용 방치’. 하지만 최고 책임자인 당시 청장이 고발 명단에서 빠진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이미 퇴임한 분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불교문화유산 전문가인 최 전 청장은 윤석열 정부가 시작된 2022년 5월 취임해 작년 7월까지 국가유산청을 이끌었다. 종묘 사태가 처음 제기된 2024년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그는 “국가 행사로 판단해 관행대로 (허가)했다”며 “판단이 미숙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적 유용’을 막아야 할 자리에 있던 그가 오히려 수차례 적극 조력했다는 사실이 퇴임 후 밝혀졌다. 경복궁을 방문한 김 여사를 청장이 직접 수행하는 사진도 공개됐다. 직원들은 “직위로 보나 그간의 행보로 보나 국가유산청 누구보다 김 여사와 밀접한 관계였고, 공공연히 그걸 과시했다”며 “조직이 만신창이가 된 지금은 사과 한마디 없이 퇴임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버렸다”고 비판했다.

국가유산을 엄중히 관리해야 할 책임 기관이 특정인의 편의를 위해 위법하게 동원됐고, 현장 실무자들은 부당한 지시에 강제 투입됐다. 본질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권력의 요구에 취약한 행정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비극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퇴임 후에도 끝까지 책임지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어떤 권력도 원칙과 법치 위에 설 수 없다는 진리를, 국가유산청은 뼈아프게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