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영 루센트블록 대표가 12일 서울 강남구 마루180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금융당국의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예비인가 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진짜 무섭고 죽고 싶습니다.”

조각 투자(STO) 스타트업 루센트블록의 허세영 대표가 지난해 10월 말 새벽 3시 10분쯤 보내온 메시지다. 조각 투자는 고가 자산을 여럿이 나눠 소유하고 투자하는 방식이다. “혼술을 해본 적 몇 번 없지만 지금도 죽을 만큼 괴롭고 힘듭니다.” 많이 취한 듯 군데군데 오·탈자가 보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 메시지를 반복해 읽으면서 생각했다. 대체 무엇이 청년 창업가를 죽을 만큼 괴롭혔을까.

미국 카네기멜런 대학 컴퓨터공학 학·석사 출신인 허 대표는 2018년 루센트블록을 차렸다. 당시 조각 투자 관련 규제 샌드박스(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하는 제도)가 만들어지자 해당 사업에 진출한 것이다. 루센트블록은 각종 승인을 받고 플랫폼을 준비하는 데 3년 반을 투자했고 2022년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50만 고객을 유치했고 누적 300억원의 공모도 완료할 만큼 사업은 순항했다.

그런데 금융위원회가 조각 투자 제도화를 추진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금융위는 당초 ‘금융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운영돼 온 시범 서비스를 제도화하는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루센트블록 대신 KRX(한국거래소)·NXT(넥스트레이드)에 예비 인가를 주는 게 맞다는 의견을 냈다. KRX·NXT의 STO 유통 실적은 전혀 없다. 사업성은 스타트업이 입증했지만 과실은 기득권이 따먹겠다는 것인가. KRX·NXT 수장은 금융위 출신이다.

허 대표를 궁지로 몬 것은 금융위뿐 아니다. NXT는 루센트블록이 추진하는 컨소시엄 참여를 검토하겠다며 루센트블록에서 각종 사업 관련 자료를 받아본 뒤 직접 컨소시엄을 구성해 예비 인가를 신청했다. 당시 김학수 NXT 대표는 허 대표에게 해당 사업에 진출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이 문제가 본지 보도로 알려지자 김 대표는 허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속이 시원해? 언론에다가 얘기하고 국회의원 찾아가서 그렇게 얘기하고 말이야. 그게 속이 시원하냐고 이 사람아. 나는 지금 굉장히 열받아 있어”라며 화를 냈다. 허 대표는 “저는 용산 가서 투신할 생각도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날 밤 그는 혼술을 했고 괴로워서 저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스물여덟 살 때부터 명절에 가족 한 번 만나지 못하고 회사를 키웠다”고 했다. 꽉 막힌 현실 앞에 좌절하면서도 고객·직원·투자자를 생각해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그의 열정과 애정을 먹고 자란 스타트업이 제도화를 앞두고 폐업 위기에 놓였다. 이런 식이면 누가 혁신 사업에 도전하겠나.

금융위는 28일 예비 인가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예비 인가를 받지 못하면 루센트블록은 서비스를 종료해야 한다. “회사를 지켜 달라”는 한 청년 창업가의 간절한 외침에 금융위는 어떤 답을 내놓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