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짐을 싸라니 ‘더 독한 곳으로 끌려가겠구나’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강경한 요구에 따라 추방한다’며 공항으로 보내더군요.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미 공군기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습니다.”
북한 억류 1년 만에 풀려난 김학송 선교사가 직접 들려준 2018년 5월 9일 석방 당일 얘기다. 그가 2020년 방한했을 때 어렵게 수소문해 만난 적이 있다. 미국 시민권자인 그는 2014년부터 평양과기대에서 농업 기술을 가르쳤는데, 2017년 느닷없이 체포돼 독방에 갇혔다. ‘북한의 굶주린 동포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지인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이것이 최고 존엄 모독죄, 공화국 비방죄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1년 만에 풀려난 그와 김동철, 김상덕씨를 태운 미 공군기는 워싱턴DC 인근 공군기지에 새벽 2시 40분쯤 도착했다. 김학송 선교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기내까지 들어와 ‘당신은 영웅’이라며 악수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영어도 잘하지 못하는 이민자인데 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며 “국가와 국민의 관계가 부모·자녀 사이와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가 들려준 얘기들이 다시 떠오른 이유는 최근 외신 기자회견에서 북한 억류 국민들에 대해 “처음 듣는 얘기”라고 한 이재명 대통령 답변 때문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억류 시점 등 현황 파악을 못 해 우물쭈물하는 모습이었다. 해당 질문을 한 미국 매체 기자가 이 대통령에게 “이 상황을 모르고 있다니 매우 놀랍다”고 꼬집으며 국제적 망신이 됐다.
뒤늦게 이튿날 대통령실이 “우리 국민 6명이 2013년부터 2016년에 걸쳐 억류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는 자료를 냈지만, 10년 안팎 억류된 이들의 상태 등 안전 여부는 아직 밝히지 못하고 있다.
김학송씨는 1년 억류를 버티게 한 결정적 계기로 체포 40일째 되는 날을 꼽았다. 그전까지는 북한 당국이 씻지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날 김씨는 조셉 윤 당시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만났다. 미국 정부가 자국민 생사를 확인하겠다며 북한에 강하게 요구해 성사된 면담이었다. 김씨는 “정부가 내 신변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절망 속에서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며 “한국 정부도 북한에 억류된 국민 6명을 접촉해 생사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철창을 여는 힘’만큼 중요한 것은 ‘철창 밖에서도 당신을 잊지 않고 있다’는 신호라는 얘기다.
이번에 대통령실은 북한 억류 국민에 대해 “문제 해결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 말의 진정성을 입증하려면, 특사를 보내거나 다른 방법을 동원해 하루빨리 억류 국민 6명의 안전을 확인해야 한다. 대통령이 몰랐던 일에 대해 이제는 대통령이 직접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