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처음으로 민간이 주도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4차 발사가 이뤄진 전남 고흥 나로스페이스. 성공적으로 쏘아 올렸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한 시간은 새벽 2시 40분이었다. 평소 잘 웃지 않던 박종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 고도화사업단장의 얼굴에 비로소 옅은 웃음이 번졌다. 그는 “발사 직전 몇 달은 직원 모두가 휴일을 반납했다. 동료 중엔 밤낮없이 일하느라 아내가 조산하는데도 제때 병원에 못 가본 연구원도 있었다. 그들에게 너무 미안했고 또 고마웠다”고 했다.
정광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체계종합팀장도 발사 성공 직후 지난 2년 반 동안 헌신적으로 일해준 직원들 생각부터 났다고 했다. 동료들 모두 수개월씩 고흥 현장에 파견 나가 주말도 없이 일한 것은 기본. 한 직원은 아내가 결핵성 뇌수막염에 걸려 입원하는 바람에 병 간호에 아이들 육아까지 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차질 없이 조립하기 위해 때론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줬다는 것이다.
갖은 고생 끝에 누리호 4차 발사를 성공시켰지만, 이들에겐 단 하루 휴가를 누릴 여유도 없었다. 오승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우주사업부 상무는 이튿날부터 누리호 5차를 위한 설계·제작에 바로 들어간다고 했다. “오늘 성공했으니 내일 또 일해야죠. 내년 5차 발사 예정일을 맞추려면 하루도 쉴 수 없는 상황이에요. 연구·개발 시간 확보에 사활이 달렸으니까요.”
우주 항공 분야를 포함한 각종 첨단 분야 연구·개발에는 연속성과 집중력이 생명이다. 발사체 기술은 더 많이 자주 쏘아 올릴수록 고도화된다. 그 과정에서 경제성도 생긴다. 더 많은 무게를 실을 수 있는 차세대 발사체, 여러 번 발사해도 회수 가능한 재사용 발사체도 발사를 거듭하며 만들어진다. 실험을 멈추면 효율도 떨어지는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항우연 연구원들이 누리호 4차 발사가 성공한 이후에도 하루도 쉬지 않고 5차 발사를 향해 뛰는 이유다. 정부도 2027년까지 누리호를 두 차례 더 발사하고, 이후엔 매년 1회 이상 발사할 계획이라고 밝힌 상태다.
문제는 규제다. 중국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하는 ‘996 근무제’를 운영하며 우주 산업에서도 앞장서 달리고 있다. 미국 민간 우주 기업 스페이스X를 운영하는 일론 머스크도 주 80시간은 일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했던가. 그렇게 분초를 다투는데 우리는 주 52시간 근무 예외 조항을 뺀 반도체특별법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했다. 초격차 경쟁에 발목이 잡힐까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 연구원의 말이 귀에 맴돈다. “그간 열심히 일한 것은 후회하지 않아요. 대만 TSMC도 엔지니어들에게 특근 수당까지 지급하며 야근을 장려하지 않습니까. 다만 우리도 확실한 포상을 주고, 마음껏 일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