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배송 차량 모습. 쿠팡은 로켓배송 서비스를 앞세워 국내 이커머스 업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쿠팡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이 3370만명의 개인 정보가 털린 쿠팡 사태에 대해 리포트를 냈다. JP모건은 “쿠팡의 이탈 고객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경쟁자가 없다(Unrivaled market positioning)”는 것이다.

쿠팡의 지난해 매출(41조원)은 대형 마트 3사인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를 합친 것보다 많다. 쿠팡의 OTT(쿠팡플레이)는 한국에서 넷플릭스에 이어 2위고, 배달 앱(쿠팡이츠)은 서울에서 배달의민족을 제쳤다. 한국인이 사고, 보고, 먹는 일상이 쿠팡이라는 거대한 플랫폼에 갇힌 셈이다.

이번 정보 유출 사태로 한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지만 쿠팡의 실질적 오너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보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SK텔레콤이 해킹당했을 때 소비자들에겐 갈아탈 통신사가 있었다. 지친 몸으로 퇴근한 뒤 내일 아침 아이의 먹거리를 챙겨야 하는 워킹맘에겐 사실상 쿠팡을 대체할 대안이 없다. 한국 소비자들이 ‘쿠팡의 봉’이 된 처지다.

한국 유통 시장은 어쩌다 이런 기형적 구조가 됐는가. 그 뒤엔 2012년 시행된 ‘유통산업발전법’이라는 정책 실패가 있다. 당시 정치권은 ‘골목 상권을 살리겠다’며 대형 마트와 기업형 수퍼마켓(SSM)의 월 2회 의무 휴업과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 금지를 결정했다.

유통 기업들은 인구와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맞춰 생존법을 찾기 마련이다. 미국·유럽의 오프라인 유통 공룡들이 고령화와 1인 가구의 증가, 소비 트렌드의 온라인 전환 등에 맞춰 변신을 시도하며 선전을 이어가는 이유다. 한국은 한때 ‘글로벌 유통 기업의 무덤’으로 불렸다. 월마트·까르푸 등 세계적 유통 기업들이 한국에 진출했지만 국내 유통업계와의 경쟁을 버티지 못하고 한국에서 줄줄이 철수했기 때문이다. 그런 경쟁력을 자랑하던 한국 유통 대기업들이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른 규제에 묶여 온·오프라인에서 발 빠른 대응을 원천 봉쇄당했다. 대형마트가 전국 매장을 도심 물류센터로 활용해 새벽 배송하는 것도 차단됐다.

미국 기업인 쿠팡이 수년간 조 단위 적자를 감수하며 인프라를 깐 혁신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유통산업발전법이 유통 대기업들의 다양한 도전과 변신을 억눌러 심야와 새벽 유통 시장을 사실상 ‘경쟁의 무풍지대’로 만들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쿠팡의 독점 체제를 만들었다.

사태가 터지자 정부와 여야는 쿠팡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작 잘못된 입법과 쿠팡이 빨아들인 정·관계 인사들이 쿠팡을 향한 감시·감독을 막아선 것에 대한 성찰은 찾아볼 수 없다. 독점은 비판과 과징금만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유일한 해법은 기업간 경쟁 체제를 만들어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돌려주는 것뿐이다. 오만한 독점 기업의 봉이 되지 않길 원한다면 쿠팡의 독주를 견제할 ‘메기’를 풀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