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걸이’ 작가 모파상은 에펠탑이 완공됐을 때 내부 레스토랑에서 매일 점심을 먹었다.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파리 시내에서 이 흉측한 탑을 직접 볼 필요가 없는 유일한 장소라는 이유였다. 1889년 만국박람회를 준비하며 에펠탑을 지을 때, 그는 격렬히 반대했다. 고전적인 파리의 미를 망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100년을 훌쩍 넘긴 지금 우리는 알고 있다. 에펠탑은 파리를 넘어 프랑스의 자부심이라는 것을.
세운상가 9층 옥상, 루프톱을 종종 간다. 요즘은 옥상 출입을 통제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운행하는 5층까지만 올라가도 괜찮다. 종묘를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산 능선과 종묘 맞배지붕이 갈라지는 선, 11월 단풍의 노랑과 빨강이 포개진 면은 볼수록 아름답다. 하지만 종묘가 아니라 동대문이나 종로 3가 쪽을 내려다보면 참담하다. 아니, 처참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도시의 폐허가 거기에 있다.
종묘 주변 재개발을 둘러싸고 소위 ‘종묘 대전(大戰)’이 한창이다. 대법원이 문화유산 보호구역 밖에서 하는 공사까지 제한할 순 없다는 판결을 내린 뒤 벌어진 일이다. 내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민주당은 현 오세훈 시장을 공격할 소재라면 뭐든지 찾을 기세다. 문화재 보호와 도심 재개발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전제를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명제와 별도로 불편한 대목이 있다. 이 정부 고위 관료들의 촌스러운 미의식과 고정관념이다. 종묘의 기(氣)가 눌릴 거라는 국무총리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풍수 전문가나 파묘를 앞둔 지관의 발언인 줄 알았다. “하늘을 가리다니…” 한탄하며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는 문화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20년 전 천성산 도롱뇽 지키겠다고 단식하던 시민단체와 스님이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도시의 승리’를 펴낸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도시와 빌딩이 부당한 오해를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파트는 콘크리트 숲이 아니고, 터널은 도롱뇽을 멸종시키지 않으며, 댐은 강물을 끊지 않는다. 진실은 반대다. 재건축한 신축 아파트 건폐율은 20% 안팎이다. 100평이 대지라면, 80평은 녹지와 도로라는 얘기다. 고층·고밀도로 지을수록 녹지가 늘어난다. 터널은 입·출구 외의 산림을 온전히 보존한다. 고갯마루 따라 도로를 만들면 주행 차량 이산화탄소 배출만 늘릴 뿐이다.
누군가는 기와의 반복을, 누군가는 빌딩 스카이라인을, 또 누군가는 둘을 섞은 풍경을 아름답다고 느낄 것이다. 취향이고 자유다. 하지만 나만 옳고 타인 취향을 부정하는 건 폭력이다. 올해 최고 화제작인 ‘K팝 데몬 헌터스’의 할리우드 제작진이 발견한 서울만의 매력이 있다. 뉴욕·도쿄와 달리, 한국의 수도엔 산·고궁·고층 빌딩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한 앵글에 잡힌 경복궁과 마천루, 서울 성곽과 도심 야경에 감탄하며 외국인들은 지금 서울을 찾고 있다.
미국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많은 존경과 지지를 받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최근 ‘반성문’을 썼다. 인류 멸종 운운하며 최악의 예측으로 위협하던 ‘기후변화 재앙론’을 틀렸다고 공식 인정한 것이다. 게이츠는 ‘기후 재앙론’은 과장됐으며, 오히려 기술 혁신으로 그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멋지고 책임 있는 리더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하늘이시여를 외치는 우리 정치인과 관료들도 타산지석으로 삼기를 희망한다. 그래야 미래 세대를 위하는 지도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