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6·27 부동산 대책에서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했고 10·15 대책에선 15억원 초과 주택의 대출 한도를 더 낮췄다. 가계 원리금 상환액을 연봉의 40% 이내로 제한하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액비율) 심사도 더 강화한다고 했다. 전세대출에도 이 잣대를 들이댔다. 집값을 잡겠다며 가계빚을 조이는 정책을 거푸 내놓은 정부가 나랏빚은 얼마나 잘 관리하고 있을까.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광현 국세정창, 윤창렬 국무조정실장, 구 부총리,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이억원 금융위원장. /김지호 기자

정부 DSR은 3년째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재정 적자를 메우려 내년에 정부가 발행할 국고채 가운데 원금 상환액은 116조3000억원, 이자까지 더하면 원리금 상환액은 150조7000억원이다. 내년 한 해 국세 수입 전망치(390조2000억원)의 38.6%. 작년(40.5%)부터 내년까지 3년째 DSR 기준을 넘나든다. 가계엔 갚을 수 있는 빚조차 못 빌리게 하면서 정부는 위험천만한 재정 운용을 일삼고 있는 것 아닌가.

문재인 정부가 2020년 꺼낸 재정 준칙 도입안은 이재명 정부 들어 사실상 폐기 수순이다. 2022년부터 작년까진 향후 4년 치 재정 중기 계획을 내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 3% 이내 등 준칙을 가급적 맞춰보겠다는 포부라도 내놨는데, 올해 8월 새 정부 첫 중기 계획에선 앞으로 이 기준을 못 지킨다고 했다. 담당 차관은 “지난 정부(윤석열 정부)도 지키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준칙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계 실수요자들을 닦달한다. 10·15 대책에 나온 3%의 ‘스트레스 금리’ 가산 방침은 아예 단체 기합 수준이다. 주택담보대출 실제 금리가 연 4%라면 7% 이자를 무는 것처럼 계산하겠다는 것이다. 연봉 1억원 직장인의 만기 30년 6억원 대출의 원래 DSR은 34.4%인데 최종 DSR은 47.9%가 돼 6억원 대출을 못 받는다. 30년 치 이자는 원래 4억3122만원인데 대출 원금을 훌쩍 넘는 8억3705만원으로 간주한 결과다. 향후 금리 변동 위험을 따지는 본래 취지에 따른 대책이면 필요한 조치겠지만, 집값 억지(抑止) 수단이라면 그야말로 억지다.

대책 이후 집값은 떨어질 조짐은커녕 매매·전세 매물은 사라지고 월세만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이재명 정부 대책을 주도한 대통령실 비서관급 이상 참모진 3명 중 1명이 최근 집값이 치솟은 서울 강남 3구에 집을 갖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재정 건전성 최후의 보루인 기획재정부를 둘로 쪼개 행정부의 예산 견제 기능을 사실상 무력화하기로 한 장본인들이다. 위험한 나랏빚은 느슨하게 방치하는 정부가 국민이 안전한 빚도 못 빌리게 하고 세금만 더 걷겠다고 한다. 가계 은행 대출 60.5%는 주택담보대출인 반면, 나랏빚 71%는 담보가 없는 적자성 채무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 말마따나 “너나 잘하세요”.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너나 잘하세요”라는 대사를 날린 배우 이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