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기타가와 스스무 교토대 석좌교수가 10월 8일 교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한국 과학계가 12개월 중 건너뛰고 싶어 하는 달은 10월이다. 노벨상을 발표하는 10월이 오면 움츠러들어 피하고 싶을 정도라는 것이다. 작년에는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휩쓴 AI(인공지능) 관련 연구가 화두가 돼 한국의 노벨 과학상 불발에 대한 부담이 작았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는 일본 연구자들이 생리의학상과 화학상을 거머쥐면서 또다시 일본과 비교되는 상황이 됐다. 일본이 지금까지 물리학상 12명, 화학상 9명, 생리의학상 6명 등 노벨 과학상을 총 27명 타는 동안 한국은 아직 한 명도 없다. 이에 대해 과학계 일각에선 “시작이 우리보다 50년 이상 빨랐던 일본과 견주는 건 지나치다”고 한다. 1949년 유카와 히데키 교토대 교수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으로 일찌감치 스타트를 끊은 일본과의 비교는 가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2000년 이후 22명에 달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이전 50년간 수상자(5명)의 4배 이상 성과를 최근 20여 년 동안 냈다는 것은, 일본 정부가 경제 성장기 열매를 과학에 효율적으로 투자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2001년 발표한 과학기술기본계획에서 ‘향후 50년간 노벨상 수상자 30명을 낸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01~2025년 수상자는 20명을 넘어섰다. 벌써 목표의 3분의 2를 달성한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 정부는 구체적으로 수치화한 노벨상 목표가 없다. 우리도 20년 전에 노벨상을 목표로 ‘국가석학’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정부는 “국가 석학 선정자는 향후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질 연구 역량을 강화하고 국가적 위상을 높일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안정된 연구를 보장하고 젊은 연구자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4년 만에 국가석학 간판을 내리고 리더연구로 개편하면서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이 제도를 주도하던 교육인적자원부가 2008년 정부 조직 개편으로 과학기술부와 통합돼 교육과학기술부로 출범하면서 상징적 제도가 사실상 사라졌다. 국가석학으로 선정된 과학자는 총 38명. 대다수가 지금은 정년을 넘은 원로 연구자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정년 이후 국내에서 안정적 연구 환경을 지원받지 못한 바람에 중국 대학으로 영입돼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노벨상 시즌이 되면 일본의 과학 저력에 대한 분석이 회자된다. 교토대·도쿄대·이화학연구소 등의 종신형 연구직과 연구비 장기 지원 구조가 20~30년간 기초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게 했고, 기초→응용→산업→재투자의 선순환 생태계를 확립했다는 내용 등이다. 여기에 구체적 장기 계획을 세우고 기초 연구 투자와 연구 자율성 확대 정책을 일관되게 이어 온 일본 정부의 역할도 빼놓을 수가 없다. 당장에 성과를 내는 연구만 지원하는 정책을 펴온 우리는 노벨상이 장기적 연구 생태계의 열매라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는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