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이 지난 2022년 10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종합감사에 증인으로 출석,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뉴스1

해마다 기업인을 불러 질문 없이 돌려보내는 ‘기업인 길들이기’ 국정감사가 올해는 다를 줄 알았다. 정권 초부터 3500억달러 대미(對美) 투자 부담을 떠안긴 데다, 국내외 기업들이 반대한 노란봉투법까지 통과시킨 탓인지 더불어민주당은 국감에서 기업인 부르는 것을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손 벌린 것과 국감 출석이 맞바꿀 대상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떤 셈법인지 이해는 된다.

국감은 헌법에 근거해 열린다.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 사안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으며, 필요한 서류의 제출 또는 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제61조 1항) 국정(國政)을 들여다보는 취지라 원칙적으로 국가기관, 지자체 등 행정부 활동이 대상이지만 기업 활동이 국가 정책이나 국민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아 기업인도 부른다.

국감의 기업인 소환이 ‘정치 쇼’가 된 것은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는 수십 명의 CEO를 불러다 밤늦게까지 병풍처럼 세워 둔 구태 때문이다. 출석하지 않으면 “국회를 무시하느냐” 호통치고, 출석해서 답변하려 하면 “다음에 하라”며 입을 틀어막는다. 과거 국감에 불려 나와 자정까지 앉아 있다가 손을 번쩍 들어 “집에 가도 됩니까” 물었던 삼성전자 사장 출신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고 사장은 끝내 집에 못 가고 새벽 1시가 넘도록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8일부터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APEC CEO 서밋’에 의장 자격으로 참석하는데, 당일에 딱 맞춰 정무위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다. 세계 반도체, 인공지능(AI) 업계를 주도하는 핵심 인사들이 참석하는 글로벌 행사의 호스트가 국감장에 오는 게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을 모르지 않을 텐데 굳이 명단에 넣었다.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삼성 웰스토리 부당 지원 사건’의 증인으로 채택됐다.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삼성SDI 등 4개 계열사의 급식을 당시 업계 1위였던 삼성웰스토리에 맡겨 부당 이득을 얻게 했다는 혐의다. 삼성은 ‘직원들에게 맛있는 밥을 주려던 것’이라 했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일감 몰아주기’라며 기소해 1심이 진행 중이다. 정 부회장은 증거 부족으로 기소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실상 답변이 불가능한 재판 사안을 묻겠다고 최고위 임원을 소환했다.

감사가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국회가 꼭 필요한 사람을 불러 따져 묻겠다고 한다면 마구잡이로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관행을 비판해 온 국민의힘 의원들이 올해는 ‘주목받기 위해’ 기업인 소환에 더 적극적이란 말도 나온다. 국감철이면 기업 대관 부서부터 전직 국회의원을 영입한 로펌까지, 증인 채택을 둘러싼 소모적 국감 비즈니스가 펼쳐진다. 국민은 안중에 없는 그들만의 탐욕스러운 리그다. 헌법이 울고 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