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9일 서울 마포구 구름아래 소극장에서 열린 2030 청년 소통·공감 토크콘서트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7곳이 지난 18일 대규모 채용 계획을 쏟아냈다. 5년간 6만명을 뽑겠다고 밝힌 삼성을 필두로 SK, 현대차, 한화가 올해 각각 8000명, 7200명, 5600명을 채용하겠다고 했다. 포스코와 HD현대는 5년간 각각 1만5000명, 1만명을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LG도 3년간 1만명을 뽑는다. 올해만 모두 4만여 명이다.

취업난이 심각한데 일자리를 수만 개씩 늘리겠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다만 주력 사업도, 경영 상황도 제각각인 대기업들이 대규모로 사람 뽑겠다는 계획을 일제히 내놓는 것은 어색하다.

과문한 탓인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주요 기업들이 이런 발표를 한다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당장 6개월 뒤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대통령 임기(5년) 동안 몇 명 뽑을지 약속부터 하는 기업이 있나. 국내 한 그룹은 채용 계획을 당사자인 청년들에겐 알리지 않고, 대통령실에만 ‘5년간 몇 명 뽑겠다’고 따로 보고했다고 한다.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배경을 묻자 한 대기업 임원은 ‘이런 날 빠지면 죽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부랴부랴 자료를 만들었다는 다른 대기업 임원은 ‘정무 감각으로 하는 일’이라고 했다.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대기업을 향해 ‘청년 채용을 늘려달라’고 한 이재명 대통령의 말을 지목하는 것이다. 이틀 만에 대기업들이 대규모 채용 계획을 내놓자, 대통령은 청년들 앞에서 “대기업 회장님들한테 읍소했는데 다행히 들어줬다”고 생색을 냈다. 대통령실은 ‘30대 기업, 100대 기업까지 확대해 청년 채용을 부탁하겠다’고 한다. 강자의 ‘부탁’은 약자에겐 ‘협박’이다.

일자리 창출은 국가 경제에 중요한 일이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다. 하지만 누가 채근한다고 뚝딱 되는 일은 아니다. 정부가 기업의 팔을 비틀고, 기업은 권력 뜻에 맞춰 발표하는 계획이 잘 지켜질지 의문이고, 지켜진다고 해도 문제다. 예컨대 삼성은 반도체와 바이오, 인공지능(AI) 중심으로 6만명을 뽑겠다고 했다. 이 사업들이 3년 뒤, 5년 뒤 어떻게 될지 불투명한데 채용 목표부터 내놓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기업들의 체력은 급격히 약해졌다. 자동차 25%, 철강 50% 등 대미 관세와 3500억달러(약 490조원)라는 엄청난 투자 보따리까지 머리에 지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는 국내에서 사업하는 한국, 미국·유럽 기업들이 “제발 재고해달라”고 호소한 노란봉투법도 밀어붙였다. 정년 연장에 주 4.5일제도 대기 중이다. “한국에서 사업하면 손해”라는 말이 나온다.

기업은 이익을 내기 위해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집단이다. 사업이 성장하고 시장에 활기가 돌면 누가 등 떠밀지 않아도 알아서 사람 뽑고 설비에 투자한다. 채용 좀 하라고 ‘읍소’하기 전에 정부가 그런 환경을 만들고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