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가장 바빠진 곳 중 하나가 로펌이다. 특히 하청 방식으로 사업을 하는 기업들로부터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원청 기업)가 사용자에 해당하느냐’ ‘하청 노조의 교섭 요청에 응해야 하느냐’ 등을 묻는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하청 기업에 노조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위법이냐”는 문의도 받았다. 그조차도 자칫 ‘노조 동향 파악’으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까 봐 걱정된다는 것이다. 일견 지나친 걱정처럼 보이지만, 로펌 변호사들은 “걱정조차 안 하는 게 더 위험하다”고 한다. 이 법의 불확실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사용자는 근로계약을 전제로 한 개념이다. 그런데 노란봉투법은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어도 근로 조건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이 있으면 사용자로 간주한다. 사용자가 노조의 단체교섭에 불응하면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 대상이다.
문제는 ‘실질적 지배력’ 개념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로펌에 일일이 물어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로펌만 신났다’는 말이 나온다. 사실 로펌도 확답을 주기가 쉽지 않다. 관련 판결이 몇 개 없고, 대법원 판례는 나오지도 않았다. 판단 과정도 복잡하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이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의 단체교섭 요청에 대해 판단한 사건을 보면 그 난도를 짐작할 수 있다. 법원은 대부분 공정이 사내 하청으로 이뤄지는 조선업 특성상 실질적인 작업 지시를 하는 원청이 사용자라고 했다. 그다음 하청 노조의 요구 5개가 단체교섭 대상인지를 판단했다. 1 성과급 지급, 2 학자금 지급, 3 하청 노조 사무실 제공 등 노조 활동 보장, 4 노동 안전, 5 취업 방해 금지 중 1·2·4는 교섭 대상, 3·5는 아니라고 봤다. 여러 사실관계를 종합해 원청이 결정 권한이 있는 영역인지 판단한 결과다. 교섭 요구부터 법원 1심까지 3년 넘게 걸렸고 지방노동위, 중앙노동위, 법원 1심 판단 내용이 모두 달랐다.
플랫폼 노동, 간접 고용 등으로 노동 형태가 복잡해진 현실에서 ‘근로계약’만을 기준으로 하면 보호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생긴다. 그런 면에서 ‘실질적 지배력’을 따질 필요는 있다.
문제는 성급한 입법이다. 사용자 범위를 파격적으로 넓히면서도 시행령을 만들거나 관련 법령을 정비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법이 통과되자마자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시위가 쏟아지고, 원청을 불법 파업으로 고소하는데도 마땅한 대응 방법이 없다. 기업 입장에선 ‘지옥문’이 열린 셈이다.
하청 노조의 헌법상 권리로 ‘노동 3권’이 있다면 기업에는 ‘경제활동의 자유’가 있다. 법의 불확실성, 사법 리스크에 지친 나머지 사업 철수나 축소, 사업장 해외 이전을 택할 수도 있다. 그러면 사각지대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취지와는 정반대 결과를 가져온다. 늘 그렇듯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