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의 대동맥,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에너지 고속도로·국도·지방도를 정교하게 연결해 재생에너지 활용도 제고’(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제21대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에너지 분야에서 대규모 송·배전망 구축을 뜻하는 ‘에너지 고속도로’ 공약을 공통으로 내놨다. ‘재생에너지’(이 후보)와 ‘원전’(김 후보)으로 정책 방향은 뚜렷하게 갈리지만,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와 같은 수요처에서 활용하려면 송·배전망이 핵심이라는 점에 뜻을 같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선 후보들은 정작 국내 송·배전망 분야 최대 현안으로 꼽히는 경기 하남 동서울 변전소 증설 문제에는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사업은 동해안의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HVDC(초고압 직류 송전)로 실어 나른 뒤, 직류를 교류로 바꾸고 전압을 낮춰 수도권의 공장과 가정에 보내려는 프로젝트다.
빠듯한 수도권 전력 공급의 숨통을 틔울 사업으로 꼽히지만, 지역구에 변전소가 있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반대 입장을 내놓고, 국민의힘 소속 이현재 시장도 인허가를 미뤄 작년 봄 시작해야 했을 공사는 1년째 기약이 없다. 전자파 등을 우려한 주민 반발을 이유로 공사를 막은 하남시에 지난해 12월 경기도가 행정심판으로 인허가를 내리라고 결정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다.
최근 주민들은 아파트 호수와 이름을 기재하는 ‘기명’ 설문조사까지 벌여 변전소 증설을 막아서고 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가구별 찬반을 확인하겠다는 게 무섭다” “이런 식으로 조사한 주민 찬반 의견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동서울 변전소 증설이 무산되면 동해안에서 하남까지 280km를 송전탑 436기 거치며 이동한 전기는 수요처로 가는 길이 막힌다. 상황이 이런데도 에너지 고속도로를 강조하는 후보들 입에서 이와 관련한 언급은 아직 없다. 에너지 문제가 주요 쟁점 중 하나였던 지난 18일과 23일 TV 토론에서도, 마치 서로 껄끄러운 듯 이 문제는 모두가 외면했다.
지금 수도권은 전기 공급이 달려 신규 데이터센터 허가를 내지 못하고, 이 지역 대학들은 AI 연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달 말 송전선이 지나는 마을 79곳 모두에서 한전이 동의받기를 완료했지만, 종점에서 전기를 받아줄 변전소를 증설하지 못하면 ‘동해안-수도권 송전 선로’ 사업이 아예 ‘말짱 도루묵’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후보들의 공약처럼 전국에서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에 나선다면 주민들의 반발은 단 한 곳에 그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에너지 고속도로 공약이 진정성을 지니려면 후보들은 “동서울 변전소 증설 문제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답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