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코리아’의 체코 원전 수주전을 지켜보며 체코라는 나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수주전 초기, 비용·납기·기술 모두 우세했음에도 “혹시 프랑스와 정치적 거래를 하지는 않을까” 무척 걱정했었다. 하지만 체코는 “모든 기준에서 뛰어났다”며 한국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했다. 최근 프랑스전력공사(EDF)가 기습 ‘계약 중단 가처분 소송’을 내며 최종 계약을 방해했을 때도 체코는 단호했다. “100년의 협력 관계가 될 것이라, 정말 신중하고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동유럽 중진국으로만 알던 체코가 생각보다 합리적이고 진실된 나라라는 생각이 들던 중, 마침 지인의 친구인 체코의 한 대학 교수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를 통해 어렴풋이 알던 체코를 좀 더 이해하게 됐다.
현대 체코인들의 정신적 근간에는 ‘벨벳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있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40여 년간 소련의 위성국이었던 체코는 1989년 11월 17일, 경찰의 폭력적인 학생 시위 진압 사태를 계기로 공산당 일당 독재를 규탄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2시간 총파업에 근로자 75%가 참여할 정도가 되자, 공산 정권은 단 11일 만에 백기를 들었다. 당시 벨벳 혁명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동유럽 민주화 바람, 이데올로기의 몰락 등 세계사의 격변에 힘입은 것이었지만, 체코인들의 타당하고 울림 있는 목소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당시 체코의 정신적 지주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바츨라프 하벨(1936~2011)의 철학을 들여다보면, 체코인의 진정성이 엿보인다. 그는 “‘힘없는 사람들의 힘’(The Power of The Powerless)은 결국 양심의 실천에서 나온다”면서 “스스로에게 진실된 삶을 통해 전체주의라는 거짓을 드러낼 수 있다”고 했다.
체코는 우리와 비슷한 점도 많다. 강대국에 둘러싸여 400년간 오스트리아 통치를 받았고, 이후엔 독일 나치, 소련에 시달렸다. 우리처럼 발효 음식을 좋아하는 체코인들은 그래서 현대차·LG 체코 공장을 통해 알게 된 한국에 유대감을 느낀다고 한다. 프란츠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의 나라답게, 냉소적 ‘블랙 유머’를 즐기는 건 체코 특유의 문화다. 실제 그들의 블랙 유머를 최근 원전 뉴스에서 보았다. 프랑스 출신 EU(유럽연합) 위원이 자국의 민원을 받은 듯, “한수원과의 계약을 중단하라”는 편지를 보낸 뒤다. 얀 리파프스키 체코 외무장관은 이 편지가 프랑스 EDF가 소송을 걸었던 그날 발송됐다면서 “프랑스인 위원이 금요일 밤 10시에 일하고 있었다니 참 이상하다. 그는 정말 부지런한 사람일 것”이라고 비꼬았다. 체코의 지인은 “한국이 수주전 탈락을 걱정했다는 게 놀랍다”고 했다. 체코인들은 모든 면이 우수하다고 보도된 한국이 될 것이라고 쉽게 예상했다는 것이다. 결국 수주전의 최종 승자는 그들이 믿는 이성과 상식, 그리고 양심이 차지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