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반 고기 반’ ‘보물 창고’ ‘금광’….
요즘 시장을 흔드는 행동주의 펀드 매니저들은 한국 주식시장을 이렇게 표현한다. SM, 오스템임플란트, 태광그룹처럼 기업 지배 구조에 문제가 있어 공격 대상으로 삼을 만한 기업이 그만큼 수두룩하다는 뜻이다. 기업 오너들 입장에선 간담이 서늘해지는 얘기다. 자기 이름을 따서 세운 SM에서 창업주 이수만씨가 쫓겨나다시피 했는데, 자신도 그런 꼴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주식 한 주 갖고 있지 않은 일반인들도 주주 행동주의를 ‘약탈적 주주 자본주의’라거나 ‘하이에나들의 기업 사냥’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2004년 소버린의 SK 경영진 퇴진 요구, 2005년 칼 아이컨의 KT&G 주주 가치 제고 요구, 2016년 엘리엇의 삼성전자 분할 요구 등 외국계 자산운용사들이 국내 상장사를 흔들어 주가를 올리고 시세 차익을 본 뒤 손 털고 떠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 SM 사태는 토종 자산운용사들의 문제 제기로 시작됐다는 점에서 기존과는 결이 다르다. 사실 SM에는 수년 전부터 브레인·트러스톤·KB 등 유수의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줄기차게 지배 구조 문제를 지적해 왔다. 이수만 전 총괄대표가 개인 회사를 통해 매출액의 6%를 로열티로 챙겨온 게 대표적 이슈였다. 펀드들의 시정 요구를 묵살하던 SM은 결국 3년 전 국세청 세무조사에 202억원을 추징당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2092년까지 향후 70년간 계속 로열티를 가져가는 계약까지 맺었다.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 빌미를 ‘이수만 선생님’ 스스로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시대가 바뀌어 펀드가 달라졌다. KKR·칼라일 같은 세계적 사모 펀드 출신들이 이끄는 요즘 행동주의는 기존 펀드와 달리 ‘조용한 해결’을 바라지 않는다. 열심히 공론화해 여론을 등에 업고 요구 사항을 관철하는 과감한 길을 간다.
주주들도 달라졌다. 왕개미들끼리 십시일반 지분 1%를 모아 기업들을 상대로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뜻을 모으고, 과감히 실행에도 나선다. 일신방직, 광주신세계, 한국철강 같은 기업들이 올해 표적이 됐다. MZ세대 주주들은 내가 회사에 돈을 빌려줬는데 제대로 돈값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2023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행동주의 펀드들도 언젠가 투자금을 회수하고 떠날 것이다. 독립적인 이사회로 새로 판을 짜지 못한다면, 주가는 도로 가라앉고 제기했던 문제들도 테마처럼 사그라질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이번 SM 사태는 투자자들에게 깊이 각인될 것이다. 상장사를 이끄는 기업인들은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돈값을 치를 길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