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스 영어사전이 2022년 올해의 단어로 ‘퍼머크라이시스(perma-crisis)’를 선정했다. ‘영구적(permanent)’이라는 말과 ‘위기(crisis)’를 합친 단어로서 안보 불안과 경제 불안정이 장기화된다는 뜻이다. 2차 대전 후 70년 넘도록 지금처럼 전염병, 전쟁,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세상을 흔든 적은 없었다. 게다가 이런 복합 위기는 끝날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재니 베도스 편집장은 “국경은 침범될 수 없고 핵무기는 사용되지 않을 것이며 선진국에는 에너지가 충분하다는 3가지 가정이 동시에 흔들렸다”며 “2023년에 글로벌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없다”고 했다.
열강의 충돌을 우려하는 리더들은 상시적인 위기 국면이 올까 봐 두렵다고 경고한다. 불가리아 태생인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냉전을 몸소 겪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가 졸업한 학교(불가리아세계경제대학)는 그가 학생이었을 때는 ‘칼 마르크스 고등경제연구소’였다. 지난달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제2의 냉전은 절대 안 된다”며 절규에 가까운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미·중 갈등이 격화돼 세계 경제의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며 “우리는 더 가난하고 덜 안전한 세계로 몽유병 환자처럼 걸어가고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IMF는 선진국들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1.1%로 내다본다. 글로벌 금융 위기와 코로나 시기를 빼면 최근 40년 사이 가장 낮다. 성장 속도가 낮아지면 주요국 간 갈등이 첨예화되고 각자도생 기류는 강해지기 마련이다. 올해만 금리를 4.25%포인트 끌어올린 미 연방준비제도는 내년 미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이달 들어 1.2%에서 0.5%로 싹둑 잘랐다. 어둠이 온다는 채비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경제 분야에 몸담은 이들은 그래도 결연한 각오를 다지는 분위기가 있다. 내년 경제 성장률을 기획재정부는 1.6%, 한국은행은 1.7%로 예고했다. 최근 40년 사이 성장률이 2%에 못 미친 해는 1998년(외환 위기), 2009년(글로벌 금융 위기), 2020년(코로나 사태)까지 3차례뿐이었다.
안팎에서 위기 경보가 요란하지만 이 땅에는 여전히 북한의 반복되는 무력 도발이나 빠른 금리 인상에 시큰둥한 이들이 적지 않다. 정쟁에 몰두한 정치권은 긴박한 국제 정세에 눈과 귀를 막고 있는 듯하다. 야당은 국정 운영에 막무가내식 반대로 일관하면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지금은 예산안 합의까지 역대 최장시간이 걸려도 될 만큼 한가한 시절이 아니다. 미래가 걸린 반도체 산업에 지원을 늘리는 방안을 놓고 시간을 끌어서도 안 되는 시기다. 퍼머크라이시스 시대에는 내부 단결이 가능한 나라부터 어둠을 뚫고 재도약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