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실험실 모르모트가 아닙니다.” 지난 17일 교육계 원로 인사들이 ‘공교육 정상화 시민 네트워크’를 출범시키며 밝힌 입장문 가운데 일부다. 우리 학생들이 ‘실험용 쥐’ 신세라는 불편한 비유를 부인하기 어려운 이유가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고등학교에 마련된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기다리고 있다.2021.11.18 사진공동취재단

이번 수능은 이과생은 수학 가형, 문과생은 수학 나형을 치른 예년과 달리 문·이과 구분 없이 공통수학(1~22번 문항)을 풀고 확률과 통계·미적분·기하 중 하나를 골라 선택과목(23~30번 문항)으로 치른 첫 ‘문·이과 통합’ 수능이었다.

국어도 공통(1~34번 문항)과 선택과목(35~45번 문항) 체제로 치렀다. 이런 식으로 수능 과목을 개편해 2022학년도부터 시행하기로 교육부가 결정한 때가 2018년 8월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에 수능 모든 과목을 절대평가로 치르겠다고 했던 김상곤 당시 교육부 장관이 이리저리 떠넘기다 1년여 만에 내놓은 수능 개편안이었다. 발표 당시 교육부는 “국어·수학 영역의 공통+선택형 구조에서 선택과목 간 난도 차이 등으로 유·불리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3년 전에 교육부가 예상한 문제는 이번 수능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선택과목에 따라 국어·수학 전체 점수가 영향을 받는 데다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선택과목별 모의 수능 표준점수 등도 일절 공개하지 않아 수험생들은 다음 달 받을 성적표에 찍힐 표준점수와 등급을 예측하기조차 어렵게 됐다. “불수능(어려운 시험)에 불통 행정의 기름까지 부어 애꿎은 학생들만 화상을 입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깜깜이 수능으로 혼란에 빠진 수험생들은 사설 업체의 고액 입시 컨설팅에 의존하는 상황으로 떠밀리고 있다.

이번처럼 수험생들을 골탕 먹인 사례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8학년도 수능이 대표적이다. 당시 교육부는 “남보다 1점을 더 따기 위한 불필요한 경쟁을 줄여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며 성적표에 점수를 표기하지 않고 1~9등급만 표시하는 ‘수능 등급제’를 시행했다. 학생들은 등급이 어떻게 매겨질지 성적표를 받을 때까지 가늠할 수 없었고, 100점을 만점으로 따진 원점수가 수십 점씩 벌어져도 같은 등급으로 묶이고, 과목별 총점 합산이 높아도 등급은 뒤처지는 현상이 벌어졌다.

당락이 운으로 갈리는 불공정성 논란이 일었고, 이듬해 재수생은 급증했다. 이렇게 파문을 부른 수능 등급제는 이듬해 폐지돼 단 1년만 시행한 수능으로 기록된다. 일각에서는 올해 문·이과 통합 수능도 2008학년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의 대입 정책은 출범 직후 수능 개편 논란을 비롯, 조국 사태를 수습하려고 정시 비율을 갑자기 바꾸는 등 임기 내내 입시 현장에 혼란을 안겨왔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입시 정책은 더 이상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