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오늘 내내 밤새 회의 끝에 본 만장일치는 과도한 상술에 맞서는 아름다운 팬덤의 표본을 지혜롭게 보여주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트롯픽에서 우리는 아름답게 퇴장합니다.”

최근 가수 영탁 공식 팬카페인 ‘영탁이 딱이야’에 오른 공지다. 좋아하는 트로트 스타에게 투표하는 팬덤 플랫폼 ‘트롯픽’을 두고 벌어진 일이다. 트로트 인기 덕분에 지난해 1월 등장한 ‘트롯픽’에서 영탁은 그해 3월부터 지난 5월 셋째 주까지 63주 연속 1위를 기록하던 차였다.

막강한 ‘화력’을 자랑했던 영탁 팬이 등을 돌린 건 가수를 응원하는 팬덤의 마음을 교묘히 이용한 업체 측의 상술 때문이다. 원래는 플랫폼에 매일 ‘출석’을 하면 1표씩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지지하는 투표권(트롯픽 내에선 ‘스타픽’이라 부름)을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지난 3일과 4일 업체 측에서 자사 쇼핑몰 제품에 갑자기 100배 내외의 투표권을 얹으면서 발생했다. 예를 들어 특정 상품을 사면 7100스타픽을 얻을 수 있게 한 것이다. 1000일을 꼬박 출석해야 1000스타픽을 얻을 수 있었던 팬들 입장에선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급작스러운 ‘쇼핑몰 프리미엄’에 수많은 팬의 항의가 이어졌고, 급기야 시스템이 멈추기도 했다. 업체 측에선 일종의 ‘기획전’이었다며 쇼핑몰도 이전으로 돌려놨다.

이에 영탁 팬은 긴급 투표를 부쳤고 1451명 중 1161명이 ‘퇴장’에 손을 들었다. “하루하루 키워온 소중한 팬심을 ‘호구’ 삼아 돈 앞에서 물거품 만들려는 얄팍한 상술을 거부한다” “과열 경쟁을 부추기며 악플을 양산하는 사태에 성숙한 팬덤 의식으로 사회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K팝에서 트로트까지 팬덤 문화가 강화되면서 팬덤 앱 시장도 급성장했다. 최근 시장 분석기관 ‘모바일인덱스’의 ‘팬덤 앱 시장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국내 팬덤 앱 사용자는 208만명. ‘멜론 아지톡’ ‘뮤빗’ 등 음악방송 투표 앱에서부터 ‘최애돌’ 같은 스타 순위 앱을 통해 ‘내 스타 1위는 내가 책임진다’를 내세운다. 음악 방송 투표 앱 사용자 절반이 앱 2개 이상을 사용했고 4개 사용자도 10%가 넘었다. 여기에 트로트까지 가세했다.

영탁 팬덤 측에서도 ‘트롯픽 팀’을 만들어 무료로 투표권을 확보하는 방법을 알려주곤 했다. 시어머니에게 “(영탁 투표용) 출석은 하셨냐”고 문안을 겸하다가 친모녀 사이 못지않게 끈끈해졌다는 둥 가족·친지 지인까지 투표에 참여하게 한 ‘열혈 사연’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팬덤 앱 사업자들이 늘어나면서 ‘1등은 전광판 광고’ 같은 각종 부상으로 유혹하며 경쟁에 불을 붙였다. 이미 임영웅 팬덤 등에선 일부 악덕 상술 앱에 대해 자율적으로 ‘보이콧’한 바 있다. 팬이라면 맹목적으로 지갑을 열 것이라며 ‘주머니 털기’에 나선 이들에 맞선 ‘퇴장’이 팬덤 문화에 새로운 지표가 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