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난해 12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자 박수를 치고 있다./뉴시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말 ‘셀프 면책법’에 서명했다. 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뒤에도 형사책임을 지지 않는 면책특권을 주는 내용이다. 퇴임 후를 대비한 것이다. 이 법안은 하원(두마)에서 지난달 초 찬성 356, 반대 41로 통과됐다. 앞서 3월에는 푸틴이 2036년까지 권좌를 유지할 수 있는 개헌안이 처리됐다. 찬성 383표였다. 헌법상 대통령 3연임 금지 조항을 푸틴에게는 예외로 하는 내용이다. 합법적 방법으로 종신 독재 체제를 굳힌 것이다.

여당 통합러시아당은 하원 450석 중 339석을 갖고 있다. 나머지 110여석을 세 야당이 나눠 갖고 있다. 대통령 직선제, 다당제 형식을 갖춘 러시아는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한다. 그러나 야당을 들러리 세우고 정권 마음대로 하는 러시아를 누구도 민주주의로 보지 않는다.

EU에선 최근 폴란드와 헝가리에 대해 ‘퇴출론’이 제기된다. 법치와 민주주의를 준수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폴란드는 동유럽 국가 중 모범적으로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들었다. 하지만 여당인 법과정의당(PiS)은 2015년 집권 이후 사법부와 언론 장악에 나서며 독재의 길로 갔다. 판사의 임면(任免) 권한을 법원에서 빼앗아 의회에 두고, 집권당이 사법부를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했다. 비판적인 언론사는 국영 석유회사를 앞세워 통째로 사버렸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도 2010년 집권 후 사법 장악을 통해 독재 기반을 만들었다. 개헌을 통해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정부가 해임할 수 있게 만들었고, 판·검사 정년을 축소해 사법부를 친여(親與) 인사로 물갈이했다. 그래도 오르반은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고 있다”고 한다.

남의 나라 얘기이기만 할까. 지난 총선에서 180석 절대 다수 의석을 얻은 민주당은 다수의 폭주를 멈출 기미가 없다. 자신들이 한 약속을 뒤집으며 야당의 비토권을 박탈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처리했고,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있는 대북 전단 금지법을 강행해 국제사회의 우려를 사고 있다.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숫자의 우위를 내세워 강제 종료시켜 버렸다. 집권당에서는 “180석의 힘을 보여줬다”는 자평이 나왔다. 검찰총장 찍어내기가 법원에서 제지당하자 ‘사법 쿠데타’ 운운했다. 검찰총장 탄핵까지 거론하고, 검찰 수사권을 없애겠다고 한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선출된 권력에 의해 민주주의가 합법적으로 전복되는 것을 경고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핵심 규범으로 성문화된 규칙보다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꼽았다. 상호 관용은 경쟁자를 존중하고 다른 의견을 인정하는 것이다. 제도적 자제는 집권 세력이 권력을 절제할 줄 아는 것이다. 다수를 내세워 힘으로만 밀어붙인다면 더 큰 주권자의 힘이 배를 뒤집어버릴 수 있다.